보리가 익어 가면
보리가 익어 가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강상돈,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 애월문학회장

비가 올 것이라 예보한 기상청 날씨와는 달리 하늘이 파랗다. 이런 날 아내와 자녀와 함께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아버지 산소는 내 고향 중산간 마을과 가까워 자동차로 마을을 지나갈 때면 훤히 보이는 곳에 있어 으레 들리곤 한다. 문안 인사를 드리고 산소 너머에 있는 보리밭을 바라보니 서서히 보리가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언뜻 보리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옛말에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 신세를 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행동한다.’는 말도 있다. 보릿고개가 턱밑까지 와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농업이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줄다 보니 그만큼 보리농사도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느낌이 든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들녘의 보리밭이 노랗게 물들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서서히 보리가 노랗게 익어가고 수확할 때가 되면 보리를 베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1년 중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가 오뉴월 보리 수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리 수확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보리를 베는 것도 요즘과 같이 탈곡기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낫으로 일일이 베어야 했다. 보리를 베다가 지친 몸을 잠시 쉬기 위해 소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게역(미숫가루)을 찬물에 말아 한 모금 마셨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꿀맛보다 더 달콤했던 그 맛을 이제 더는 느끼지 못하니 그날이 그립기만 하다.

당시는 일손이 부족했던 터라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면 늘상 밭으로 달려갔고, 이러한 일은 밤이 되도록 이어졌다. 또한 비가 올 기미가 보이면 집에 와서도 밭으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비 맞은 보리는 품질에도 영향을 끼쳐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기에 밤낮으로 곳곳에 있는 밭의 보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보리농사를 하지 않아도 여러 농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보리농사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러나 농촌 변두리에 가도 보리밭은 찾아보기 힘들어질 정도가 돼버리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던 시대를 벗어나고 보니 농사를 짓는 사람도 수익을 올리는 다른 품종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농촌에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전처럼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농촌 현실이 그저 막막해 보이기도 한다. 농사가 가장 정직한 일이라지만 하늘과 땅의 조화 없이는 그 정직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 옛날 가족 간의 사랑으로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던 나날은 이제 그리운 추억으로 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12년째이다.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쌓여 한 몇 년 마음고생을 했다. 아내가 더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애타기만 했다. 아버지가 되어보지 않으면 아버지의 심경을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이제 아버지가 되고 보니 삶의 난관에 봉착할 때 아버지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생각해 본다. 세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이유가 무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