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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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가문의 재산을 3대 이상 보존하는 방법은 뭘까.

미국 명문가에서 배우는 부의 대물림(Family wealth)’이란 책은 나름대로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인 제임스 E. 휴즈 주니어는 30년 이상 수많은 가문에 법률 자문을 해주고 있는 변호사다. 그는 가문의 재산을 첫째 가문 구성원들의 인적 재산(가풍, 인성 등), 둘째 그 개인이 평생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적 재산(교육적, 직업적, 예술적, 인간관계 네트워크 등), 셋째 물적 재산(주식, 부동산, 금융자산 등)으로 구분했다. 인적·지적 재산을 물적 재산보다 앞순위에 뒀다는 점이 시선을 끈다.

고영천 전 오현고 교장이 최근 펴낸 영운집(靈雲集) 증보판을 접하면서 명문가의 대물림이란 말이 뇌리를 스쳤다. 영운공 고경준(高景晙·1839~1897)은 고 교장의 고조부로, 조선 시대 제주목 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성균관 전적, 사간원 정언, 병조 좌랑, 예조 좌랑, 제주목 판관 등을 역임한 제주의 대표적인 문신이다.

방조(傍祖)인 영곡공(靈谷公) 고득종(高得宗·1388~1460)을 인생의 롤 모델로 삼고자 아호를 영운이라고 했다. 고득종은 조선 시대에 제주 출신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차관보급인 호조참의와 예조참의, 중추원동지사 등을 거쳐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영운집초판은 1989년 고 교장의 부친(고대종·高大鐘)에 의해 발간됐다. 이 일은 그의 모친(문효순·文孝順)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친은 4·3 사건 때 통행 금지를 뚫고 혼자 돌고 돌아서 멀리 떨어진 본가를 찾아 소각 직전의 유필과 유품, 금관, 조복, 교지 등을 가까스로 꺼내왔다.

여기에 고 교장이 유품·유문, 사진 자료 등을 보충하고 인명·지명·고사·고전·관직·과거 제도 등을 더해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증보판을 낸 것이다. 그래서 영운집은 한 집안의 인적·지적 재산의 축적이요 결집이다. 덕분에 제주학의 콘텐츠도 풍성해졌다.

우리 속담에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라고 한 것은 인적과 지적 재산을 무시하고 물적 재산에만 치중한 때문이 아닐까. 후대가 갑질졸부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선대가 이룬 엄청난 업적에 먹칠하는 사례는 여럿 있다.

대물림하고 보존해야 할 것은 만이 아니다. 정신적 요소도 함께해야 한다. 영운집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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