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꽃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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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수필가·농업인

감귤꽃 진 자리에 몽실몽실 열매들 보이더니, 무성한 갈맷빛 잎사귀들의 치마폭에 숨어 버렸다. 자궁같이 평화로운 그 안에서 몸피와 달콤한 속살 키우고, 가을 햇살 좋은 날, 탱글탱글 샛노란 얼굴들을 자랑스럽게 내밀 것이다. 그때까지는 온전히 농부의 시간이다. 자식같은 어린 것들이 건강하게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애지중지 살피고 지켜야 하는 노동의 시간들이다.

벌써, 열매들을 위협하는 병해충들과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병해충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인간의 독선과 자만이다. 그것들도 생명체이니만치, 살아갈 당당한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농사일은 저마다의 일용할 양식을 놓고 쫓고 쫒기는 인간과 유해동식물 · 병해충과의 숙명적 다툼이다. 상생이 아니라 상극(相克)치킨게임으로, 서로의 생존이 걸려 있어 어느 쪽도 백기를 들 수가 없는 배수진을 친다.

감귤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감귤병해충은 100여 종이 넘는다. 농약은 일 년에 열 번 정도를 살포하는데, 응애류와 궤양병,곰팡이병 등이 요즘 방제 대상이다.

먼지만큼 작은 벌레인 응애는, 나뭇잎 뒷면에 서식하면서 흡혈충처럼 엽록소의 진을 빨아 먹기 때문에, 잎들이 기력을 잃어 열매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게 된다. 잎과 열매에 문둥병 환자처럼 부스럼 딱지가 생기는 궤양병과, 수확기 열매에 긁힌 것 같은 상처로 상품성에 타격을 주는 곰팡이병도, 실기(失期)하면 농사를 망치게 된다.

농약은 살포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방제복을 겹겹이 입고, 반드시 보안경과 마스크도 착용해야 한다. 작업환경이 이렇다 보니, 작업 중에는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때문에 양수기나 농약호스에 이상이 생기면, 젊잖은 농부들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농약살포를 분담하는 부부 사이에 대판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바로 작업 중 문제가 발생할 때이다. 제 풀에 솟아난 분노를 애먼 상대에게 돌리는 바람에, 결국 농장에서 등을 돌리고 귀가하는 부부가 적지 않다.

올해는 하우스감귤과 노지 감귤 모두 꽃이 적당히 피어, 작황이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민초들의 총체적 삶을 친친 옭죄고 놓아주지 않는 코로나 19가 걱정이다.

빨리 예약하라고 호들갑 떨더니, 백신접종 날짜는 꿩 구워먹은 자리이고, 지구촌 동네방네 케이방역자랑하더니 요즘은 세계에서 꼴찌 언저리를 헤맨다는 비보(悲報)이다. 그럼에도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백신확보 실패는 눙치면서, 거리두기와 마스크만이 살 길이라는 무능한 정부의 설레발은 이제 공허하다 못해 가증스럽다.

임기말 독불장군 대통령이, 제발 민생 제대로 살펴주시기를 가슴 조이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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