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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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논설위원

음력 첫 정월 대보름은 대표적인 세시 명절입니다. 한자로는 상원(上元)이라 합니다.

이날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대보름에 대한 첫 기록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부터 우리의 중요한 절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제(洞祭)의 형태로 다양한 의례와 제사가 전해 옵니다. 약식과 오곡밥, 묵은 나물, 부럼 깨기 같은 절기 음식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지요.

음력 새해 처음 맞는 보름날. 전통적으로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큰 명절로 여겼습니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냅니다. 오곡밥과 같은 절식을 지어 먹으며, 달맞이와 달집태우기, 지신밟기와 쥐불놀이 같은 전통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유래의 기록을 보면 최초 《삼국유사》 권 1 <기이(紀異)> 편입니다.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이 정월 보름날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을 산책하던 중에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왔습니다. 쥐가 사람처럼 소지왕에게 말하되, 까마귀를 쫓아가 보라 합니다.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는데 봉투에, 이 봉투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한 신하가 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도록 권했습니다. 왕이 글을 열어보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었지요. 왕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간음하고 반역을 꾀하였음을 알게 됐습니다. 왕은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이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命名)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했답니다.

아직도 제주에서 일부 가정에는 정월 보름 저녁에 한 해 동안 터주와 가족들의 건강과 집안이 무탈하도록 무속인이나 스님을 초청해 안택(安宅)을 지냅니다. 아울러 음력 정월이면 곳곳에서 마을제를 준비하느라 떠들썩하지요. 구좌읍 송당리, 열여덟 개의 오름 중 하나인 ‘당오름’의 한 귀퉁이에 ‘송당본향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새해에 제주에서 가장 큰 마을제인 신과세제(新過歲祭)가 열리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제(祭)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드문 행사로 도민만 아니라 내륙에서 작가나 기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나 정치인이 이곳을 찾아 한 해의 복을 기원합니다.

예부터 제주에서 ‘들불’ 놓기는 선인들이 거친 환경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 자연과 함께해 온 역사입니다. 1960년대 들어 정부에서 산불 위험과 지력 약화를 이유로, 전국 모든 산야에 불 놓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사라졌지요. 제주 들불축제는 1997년 시작됐습니다. 당시 신철주 북제주군수는 수복강녕과 풍요, 액운 타파를 기원하는 의미로 애월읍 봉성, 구좌읍 덕천을 거쳐 4회부터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에 들불을 놓았습니다. 중산간을 붉게 물들이며 피어난 들불은 제주의 관광자원입니다. 이 행사는 2015~2018년 4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우수축제’, 2016~2018년 3년 연속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에 선정되면서 우리나라 대표급 축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앞으로 ‘들불의 향연’ 제주 들불축제가 세계적인 우수한 축제로 거듭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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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자 2022-02-14 20:37:52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