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의 유해를 안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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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더 웨이
피레네 산맥서 죽은 아들의
소망 이뤄주기로 결심한 탐
엄마를 잃고 방황한 자식의
마음을 여정 통해 헤아리고
새로운 시각의 인생 깨달아
탐은 어느 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아들이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엄마를 잃고 방황하던 아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나 교감 없이 맹목적인 사랑만 쏟아왔던 그는 아들이 못다 걸은 길을 대신해서 걸어주기로 결심한다.
탐은 어느 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아들이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엄마를 잃고 방황하던 아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나 교감 없이 맹목적인 사랑만 쏟아왔던 그는 아들이 못다 걸은 길을 대신해서 걸어주기로 결심한다.

▲꽉 짜인 진료 일정에 모처럼 짬을 낸 안과의사 탐이 친구들과 골프를 치고 있다. 몇 미터 떨어진 거리도 카트를 타야 할 정도로 걷기는 싫지만 그래도 골프는 좋아한다. 어프로치 샷 도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아드님 다니엘이 사망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폭풍을 만났어요.”

명문대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해온 아들이다. 지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 방황하기 시작하더니,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여행을 떠났었다.

걱정이 되고 마음에도 안 들었지만 다 큰 아들에게 아비의 만류는 씨알도 안 먹혔다. 그런 아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오려고 홀아비 탐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프랑스의 생장 피드포르라는 곳으로 떠난다.

국내에선 개봉된 적 없지만 마틴 쉰 주연의 영화 ‘더 웨이(The Way)’의 오프닝 장면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배경의 영화들 중에선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프랑스 국경을 출발해 스페인 북부를 한 달 이상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수많은 이들의 무덤과 묘비를 만나게 된다.

첫 날 피레네 산맥 해발 1230m 고지에서 만나는 영적인 분위기의 티바울트 십자가도 누군가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둘째 날 수비리를 향해 가는 산길에서 만나는 일본인 무덤도 순례자들의 눈길을 끈다. 2002년 8월에 이 길에서 숨을 거둔 64세 야마시타 신고씨의 무덤이다.

일주일쯤 지나 나바레테와 아소프라 사이 구간에서 만나는 제임스 윈터스의 묘비에 쓰인 글귀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나로 인해 슬퍼하지 마세요(Don't grieve for me now). 나는 자유로워요(I'm Free). 나는 신이 인도해주시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어요(I'm following the path God laid for me). 신이 지금 나를 원했어요(God wanted me now). 그가 나를 자유롭게 해줬어요(He set me free). 나는 이제 자유로워요(I'm Free now).’

2009년에 눈을 감은 29세의 젊은이가 그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기는 위로의 말인 듯하다.

영화 ‘더 웨이’는 아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나 교감이 없이 맹목적인 사랑만 쏟아왔던 남자의 이야기다.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순례의 출발점인 프랑스 국경 마을 생장 피드포르에서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난 탐은 순례 첫 날 사고를 당한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아들이 못다 걸은 그 길을 대신 걸어 주기로 결심한다.

순례길 곳곳에 아들의 유해를 조금씩 남겨주고도 싶었다. 마침 순례에 필요한 모든 장비는 아들이 남긴 유물과 배낭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터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은 도중에 누군가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거의 매일 반복된다. 탐 역시 출발은 혼자 했지만 도중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 명의 동료가 생기며 한 팀이 된다. 여기에 오게 된 이유도 다양하다.

탐과 제일 먼저 친해지는 네델란드 수다쟁이는 뱃살을 빼기 위해 왔다. 곧 있을 친지 결혼식에서 친척과 지인들에게 말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은, 뱃살 때문에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러나 걸어서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순례길 분위기에 취해 하루하루 식탐으로 추가되는 뱃살이 두 배는 더 많다.

두 번째로 만나는 캐나다 여성은 담배를 끊기 위해 왔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픈 상처를 숨기고 있다. 폭력 남편과 이혼할 때 임신 중이었다가 낙태를 시켰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아가의 울음소리가 매일 들리며 환청에 시달려왔다. 부디 아가가 평온하게 잠들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심정으로 왔고 자신 또한 구원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아일랜드인은 여행작가다. 오랫동안 유명작가를 꿈꿔왔으나 잡지사에 글을 써 겨우 밥벌이 하는 세월이 십여 년을 넘기고 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슬럼프에 시달리다가 이 길을 걸으며 글감을 찾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처럼 산티아고에서 좋은 작품을 남기며 대작가가 되고 싶어 매일매일 순간순간 순례길 풍경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이질적이 4인이 부딪히고 화해하며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와 함께 순례길 위에서 이어진다.

누군가의 상처를 위로하며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상대의 아픈 내면을 통해서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내면을 투영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보여주는 스토리 라인에 덧붙여 이 영화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의 일상을 사실적이고 효과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는 매력이 크다.

세계의 여행자들이 들뜬 모습으로 모여든 생장 피드포르 정경에 이어, 첫날은 성모상과 양떼들이 교차하는 피레네 산맥 풍광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저녁 늦게 도착한 스페인 첫 마을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는 땀냄새와 코골이로 가득한 공간에 수십 명이 단잠에 취해 있다. 순례길의 숙소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몰이축제의 도시 팜플로냐를 벗어난 일행은 주변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페르돈고개에 올라 ‘바람의 길이 별의 길을 가로지르는 곳’임을 실감한다.

찰톤 헤스톤 주연 영화 속 ‘엘시드’가 묻혀 있는 부르고스 대성당 장면과 럭셔리한 숙박을 앞둔 일행이 레온의 산마르코스 수도원 앞에 열 지어 선 장면은 순례길 도중에 만나는 대도시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 준다.

해발 1530m에서 만나는 철의 십자가 ‘쿠르즈 데 페로’에선 조약돌 하나씩이 돌무덤 위에 얹혀진다. 각자의 소망을 담아 주머니에 고이 간직해왔던 조약돌들이다. 바로 옆 만하린 알베르게 앞으로 ‘산티아고까지 222㎞. 예루살렘까지 5000㎞’라고 쓰인 이정표가 그들의 좌표를 말해준다.

여행작가의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오세브레이로 고원 마을과 기나긴 여정의 막바지임을 알려주는 몬테 데 고조 언덕 그리고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의 그 유명한 향로미사…. 이렇듯 영화는 한 달 넘는 순례길 여정을 단 두 시간에 함께 하는 듯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산티아고(San Tiago)’는 성인 야고보(Saint James)의 스페인 식 이름이다. 그가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작은 배에 올랐던 곳이 스페인 북서 해안인 묵시아다. 주인공 탐은 마지막 남은 아들의 유해를 묵시아 바닷가에 뿌려주고 순례 여행을 마친다.

탐은 안과의사였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다 넓게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좁은 세계에 갇혀 살았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아들이 인도해준 순례길 여행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

영화는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가 다시 여행길에 나선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모로코 어딘가를 걷는 그의 표정은 이전과는 다르게 밝고 여유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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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2022-02-17 07:57:25
자세히 보면 베낭에 일제의 욱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이 영화보면서 영화 내내 일제 욱일기가 계속 보여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는 좋을지 몰라도 화면에서 욱일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사진이라도 욱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