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있는가, 지금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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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조선시대 사람이 뽑힌 치아를 ‘입의 귀중한 빗장’이었다면서 애도한 글이 보였다. 문득 오존층과 북극의 얼음이 떠올랐는데, 이들도 ‘지구의 빗장’과 같은데 약해진 잇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나 보다.

육신의 노쇠는 소멸을 향해 가는 개체들의 현상이며, 지구의 온난화는 다가오는 위기의 조짐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살면서도 우리는 자연과 주변의 많은 것들을 착취하고 학대한다. 얼마 전 인도에서 탯줄도 자르지 않은 채 버려진 신생아를 어미개가 품어줘서 죽지 않고 구조되었다고 한다. 지참금 악습 때문에 가난한 집에 여아의 탄생은 재앙이라지만, 오랫동안 여아는 여러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생년월일이 몇 살 아래 남동생과 동일한 노인은 그녀의 출생 신고가 나중에 태어난 아들과 한꺼번에 된 예이다. 인간은 가족 구성원에게도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고, 집단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린 딸들의 희생도 당연시 여겼었다.

산신들을 달래고자 안데스 산맥 얼음 속에 매장된 어린 소녀들은 우리지역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는 성담을 쌓을 때 무너지지 말라고 그 아래 생매장했다는 가난한 과부의 여섯 살 난 딸 수산본향당 진안할망, 무사 귀환의 제물로 마라도에 버려졌다는 아기업개 어린 소녀, 과학 기술이 발달로 인류의 사고방식이 많이 진화했지만,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갖가지 무지에서 싸움만 하니 앞으로도 재편집해야 될 삶의 분야는 많을 것 같다.

확산되는 바이러스로 위축되고, 머지않아 기후 난민이 떠돌게 될 것이라는 예고에 자칫 근시안적인 우울이나 냉소에 빠지기 쉬운 요즘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계기로 지금까지 우리의 교만과 야욕을 되돌아보면서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여기던 주변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겸손과 자제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기후뿐 아니라 생명 활동의 근원인 물이나 대지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자연적 원천에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의 결합으로 탄소를 제거하여 기후변화 과정을 늦추려는 노력에 주의를 기울이고, 최소한 나무라도 베지 말고 쓰레기 처리 정확히 하면서.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저장하는 식물의 기능을 확대시켜 더 많은 탄소를 더 깊은 지하에 수백 년 저장할 식물을 만들고, 지하 심층에 미생물들을 유용하게 이용하며, 해마다 3억 톤씩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오염을 막기 위해 이를 먹는 미생물을 연구하고, 탄소를 빨아들이고 플라스틱 오염물질을 걸러주는 바다 수중식물들의 정화 능력을 활용하는 등. 재앙에 대비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워 작은 변화로 큰 차이를 이루면서, 인류는 위기를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한 마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불치병인 치매를 빛과 소리로 치료하는 방법도 나올 것으로, 감마 뇌파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면서 뇌의 접속 가능성과 공시적 분석능력을 증가시키는 실험이 쥐를 대상으로 성공했다고 한다. 사람에게 적용하는 임상 실험 단계라니 역시 희망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곤경에 처해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과 낙관일 것이다. 공동의 위기는 일사분란 협동심을 유발하고, 밝은 미래는 끊임없는 탐구와 우리의 저력에 대한 신념이 그 바탕이다. 앞으로 70년 후에 사람들은 그때는 이미 과거 일이 된 지금의 위기를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연대기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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