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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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리 한라병원 흉부외과장.
제주도에서 개심술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과거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서울로 향해야만 했던 환자들이 가까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행복해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지난 일 년간 제주도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를 분석해 보니 전체 환자의 60∼70%가 관상동맥우회술이 필요했던 허혈성 심장 질환자였다. 일 년간 35명의 협심증 환자가 수술을 받았으며 이들 중 응급 혹은 준응급 수술이 필요했던 환자가 13명(37%)이나 되었으니 과거제주도내에서 심장수술을 받을 수 없던 시절에 이런 환자들이 목숨을 걸고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협심증 환자들은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행기 좌석관계, 기상관계 등의 사정으로 실제 이송까지 지체되는 시간 동안 환자의 심장은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상황일까? 필자가 수술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제주도내에 심장환자를 진료하고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하는 병원이 세 군데 정도 되는데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필자가 일하는 병원 환자들이고 다른 병원에서 의뢰되어 오는 환자는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그야말로 초응급 환자들만 한, 두 명 수술한 기억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아직도 제주도내에 있는 환자들은 이런 위험한 비행을 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도내 병원의 수준과 실력을 믿을 수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겠다는 것은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에게 현재 상태에서 비행기 탑승의 위험성과 도내에서도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이 있다는 정보는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심장협회의 권고에 의하면 2 주 이내 발병한 심근경색증 환자, 2 주 이내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받은 환자, 불안정형 협심증 환자, 3 주 이내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은 환자, 심부전이 심한 환자, 부정맥이 조절되지 않은 환자는 비행기 탑승을 엄격하게 금하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권고사항도 제주도 같은 섬 지역에서 수술할 병원이 없었던 1 년 전이라면 무시할 수 밖에 없을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가까운 곳에 협심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음에도 이러한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지 않고 환자에게 비행기를 타라고 권하는 것은 더 이상 방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환자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다짐하는 한 마디의 경구가 있다. “Do No Harm” 즉, 환자에게 도움을 못 줄 망정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자신이 능력이 안될 때에는 무능력으로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기보다는 더 나은 의사에게 의뢰하라고 일러두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병원의 협심증의 전체 수술사망율은 2%대로 응급환자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우수한 성적이라 생각한다. 제주도는 지역이 좁아서 일단 환자가 빨리 병원에 올 수 있으며 병원도착부터 심장내과의사의 진단까지가 육지의 어느 대학병원과 비교해도 빠르다. 더군다나 우수한 심장내과의사들이 여러 병원에 배치되어 있어 수술하는 외과의사 입장에서는 아주 이상적인 지역이 제주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위험한 비행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조광리·제주한라병원 흉부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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