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체게바라'가 쓴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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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스키 마스크와 별 세개가 박힌 낡은 황갈색 모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날카로운 눈.

'멕시코의 체게바라'로도 불리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모습이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총 대신 문자라는 수단을 사용해 '인터넷 전쟁'을 벌여온 마르코스의 우화소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와 '딱정벌레 기사 돈 두리토'(이상 현실문화 펴냄)가 번역 출간됐다.

혁명과 투쟁의 언어로 가득찬 책이 아닐까 싶겠지만 의외로 이 두 권의 책은 독특한 상상력에 기초한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고있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이미 2001년 한차례 번역,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여기에 새로운 이야기들과 초판에 없던 삽화가 추가됐다. 수정 증보판이다.

마르코스가 성명서나 지식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삽입했던 이 이야기들은 그가 실존 인물인 원주민 할아버지 안토니오로부터 들은 신화적 이야기와 가르침들을 풀어낸 것이다.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해 그는 옛날 밀림에 고대 도시를 세우고 해와 별과 달의 지도를 그렸던 마야인들의 지혜를 현대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신들은 잠에서 깨어났다네. 밤하늘 위에 별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세상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네. 신들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떠났다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밤을 만든 게 누구였는가? 바로 훌륭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이었다네. (중략)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어두워져야 한다네. 사실 빛나는 이들은 빛을 끈 이들로 인해 밝게 빛나는 것이라네."(56쪽)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라고 부르는 빵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재료가 아주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 재료 가운데 하나는 고통일세.'"(172쪽)
'딱정벌레 기사 돈 두리토'는 안경을 끼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유쾌한 딱정벌레 두리토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은 책이다.

부주의한 사람들에 의해 밟힐까 항상 두려워하는 딱정벌레 두리토는 억압 받는 민중의 상징이다.

마르코스는 우연히 만난 두리토와 단짝이 돼 함께 사파티스타의 대항 전략을 논의하기도 하고 때로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상상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이 도시는 병들었어. 이 병은 절정에 달해야만 치료될 수 있을 거야. 이 거대한 고독의 집합체는, 고독이 더해져 몸뚱이가 더욱 더 커진 이 고독은, 결국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왜 그리도 무기력한지 깨닫게 될 거야."(113쪽)
조수정 옮김. 288ㆍ296쪽. 각권 1만원.(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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