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경성의 거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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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상계' 출간
1930년대 대중지 '삼천리' 3호에는 '조선 대재벌 총해부'라는 기사가 실렸다.

김성수와 민영휘, 최창학을 3대 재벌로 꼽고 재산내역을 분석했으며 이들의 자산 순위를 매긴 데 더해 따끔한 평가까지 덧붙였다.

최고의 거부는 조선한일은행과 조선제사회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운영한 '조선의 토지대왕' 민영휘 일가로, 지금 돈으로 1조2천억원에 달하는 1천만원의 자산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삼천리는 "민씨는 재리(財利)에 선각자이엇든지 관직을 띄고서도 일면 축재에 조끔도 겨을으지 안코 각 방면으로 부력의 증대에 열중하엿섯다 한다"며 재산형성 과정을 문제 삼아 2위로 매겼다.

1위는 자산 500만원(지금 돈 6천억원)의 김성수 일가다. 김성수는 경성방직과 셩성상공, 해동은행, 동아일보, 중앙학교를 소유했다.

3위는 현금 동원력이 최고였던 '금광왕' 최창학으로 소유 재산은 300만원으로 1만3천원(지금돈 15억6천만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다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삼천리는 그를 "고생을 해본 것, 비교적 정재(淨財)인 것, 현금이 만흔 것 등의 이유로서 민영휘, 김성수 양씨이 재벌보다도 오히려 그의 장래를 기대함이 더 크리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소설가 박상하 씨가 쓴 '경성상계(京城商界)'(생각의 나무 펴냄)는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전후에 이르는 시기, 경성 거부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식민지배와 근대화 속에서 싹튼 자본주의와 상업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가인 박승직을 모델로 한 대하소설을 쓰던 저자는 "우리 재계사가 8.15 해방을 기점으로 그 이전을 '선사시대'로 규정하고 있는 데 대해 동조하지 않는다"며 조선왕조의 몰락에서부터 해방전후에 이르는 반세기의 기록을 살폈다.

조선 시대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았던 육의전이 몰락하고 기업이 탄생하는 과정은 경성상계 흥망성쇠의 하이라이트다.

한일병합 직후인 1911년 '시사신보'가 50만원(지금 돈 약 600억 원) 이상의 자산가를 조사했을 때 32명이 명단에 올랐다. 이들 대부분은 왕족이나 관료 출신 양반, 지방 토호들이었으나 육의전 출신인 백윤수도 '한성 종로 거상'으로 불렸다.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의 조부이기도 한 백윤수는 육의전이 이미 오래 전에 소멸한 뒤에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대창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그의 아들 백낙승은 이승만 정권과 결탁해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기업인 '태창 재벌'을 탄생시켰다.

이외에도 신문사 사장보다 더 많은 돈을 저축했던 기생들과 자동차와 금광으로 순식간에 거부가 된 사람들, 새롭게 등장한 백화점과 영화관, 요리점의 경쟁 등 근대화시기에 숨가빴던 변화상이 펼쳐진다.

광복 이후 재계의 판도는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려 일제시대 승승장구했던 기업들은 반민특위의 숙청 작업으로 스러지고, 이 틈에 새로운 기업이 적산 기업을 불하받아 몸집을 불리고 한국전쟁을 통해 더욱 성장하게 된다.

300쪽. 1만2천500원.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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