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산업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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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소설가·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베르나르 베르베르, 오르한 파묵, 요시모토 바나나 등 외국 유명 작가들의 방한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소설은 이미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자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는 있어도 자국 소설을 보호하기 위한 ‘스토리 쿼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나 민족 단위로 소설이 창작되고 유통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독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으며, 작가들은 적자생존의 냉혹한 시장에서 작품성으로 정면승부를 벌여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 역시 국경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올드보이’, ‘미녀는 괴로워’,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원작은 모두 일본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 연출을 희망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일본 만화나 일본 소설 마니아란 사실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소설이나 한국만화의 판매가 저조한 상황에서도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과 ‘신의 물방울’, ‘노다메 칸타빌레’ 등의 일본만화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나날이 성장하는 뮤지컬 시장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뛰어난 소극작용 창작 뮤지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극장용 뮤지컬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 비싼 라이선스 비용을 내고 들여온 작품들이다.

이야기 산업은 스토리텔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콘텐츠로 문화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기존 이야기 산업이 문학, 영화, 연극, 드라마 등 예술을 중심에 두었다면, 디지털 콘텐츠의 발달과 함께 21세기 이야기 산업은 예술 외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게임의 가공할 만한 문화적, 경제적 파급 효과는 이미 확인된 바 있으며, 제품 광고나 기업 광고, 기업 경영과 개인 경영에서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아직 그 수준이 탁월하진 않지만 이야기를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도 만들어졌으며, 이야기를 단순히 보고 듣고 읽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오감을 통해 온몸으로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가상현실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 되었다. ‘이야기 말하기(story-telling)’의 수준을 넘어 ‘이야기 하기(story-doing)’의 차원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은 이야기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웹사이트의 블로그나 게시판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사라진다. 이들은 종이책을 통한 이야기와도 다르고 전자책에 담긴 이야기와도 다르다. 다양한 주제에 동시다발적으로 모여 떠들며, 댓글을 통해 그 이야기의 장단점을 같은 공간에서 논박하고, 또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혹자는 제2의 구술문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도 하고, 혹자는 작가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독자가 이미 완성된 이야기를 받아들이던 단계를 벗어나 작가이면서 동시에 독자인 네티즌들이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의 출현을 확신하기도 한다. ‘세컨드 라이프’는 인터넷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가꾸어가는 일이 가능함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거리를 두는 그 ‘틈’과 그 ‘사이’에서 낯선 이야기들이 명멸한다.

이야기에 대한 미학적 가치가 우선시되던 시절도 지나갔다. 어떤 이야기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지만 어떤 이야기는 정보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도구이며 어떤 이야기는 디지털 기술을 구현하는 작은 역할에 머무른다.

구조주의가 학술활동을 규정하는 하나의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방법론으로 인정받았듯이, 이야기도 개별 학문의 영역으로 쪼개져 논의될 것이 아니라 여러 학문을 포괄하고 융합하는 보편 영역으로 자리매김 될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예술이나 공학이나 경영학이나 인문사회학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종횡으로 아우르는 크고 변화무쌍한 강줄기에 가깝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디지털은 소멸하는 이야기들을 더 오래 더 빨리 더 쉽게 만들고 간직하는 길을 터놓았다. 이야기로 과연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이야기산업의 미래를 전망하는 진지한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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