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여! 인생의 칵테일, 마셔 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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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칵테일 바 "바텐더" 이야기

비바람이 휘휘 불고 천둥번개가 치던 21일 밤, 제주시 칠성로에 있는 칵테일바 ‘더 셰이커’.

‘비가 오면 손님이 줄어든다’는 칵테일바 직원의 말을 듣고는 조바심이 일었지만 손님은 이틀 전보다 많았다.

밤 10시50분, 윙 도는 빨강.파랑의 천연색 조명이 천장에 쏘아지고 흥겨운 댄스음악이 흘러나오더니 현란한 칵테일쇼가 시작되었다.

칵테일바 매니저인 양승선(31.닉네임 위노)씨가 “멋진 밤, 칵테일바에 오신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소리쳐 주세요” 라고 말하자, 이내 칵테일바는 ‘와’하는 환호로 가득 찼다. 반짝이는 불꽃봉을 돌리는 ‘스파쿨러’ 묘기, 손목 바깥으로 술병을 두 바퀴 돌린 뒤 거꾸로 잡는 ‘감아잡기’, 어깨 뒤에서 앞으로 넘긴 병을 손등 위에 세우기 등등 아슬아슬한 묘기에 손님들은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쇼는 양씨가 등장하자 더 고조됐다. 양씨는 야구방망이를 닮은 긴 목의 ‘갈리아노’를 들고 병을 내렸다 올렸다 묘기를 부렸다. 닉네임이 ‘스톰’인 한 바텐더는 몸을 흔들며 병에 음료를 넣고 흔드는 ‘셰이킹 플레어’ 등의 묘기로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쇼의 하이라이트는 ‘위노’의 화려한 불쇼였다. 병에 불을 붙여 몸에 이리저리 대는 그를 보면서 몸에 불이 붙지 않을까 숨죽이는 동안 그의 불꽃 병은 손등에서 무릎으로, 어깨 위로, 천장으로 오르내렸다.

쇼를 끝낸 ‘위노’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오늘 실수가 많았어요. 손님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드리려고 쇼를 벌였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네요.”

검정 군복에 견장을 한 그의 복장은 이 바의 바텐더 정복이다. 옷앞을 알록달록한 배지로 장식한 그는 “손님들이 달아준 것도 있다”며 “늘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자랑했다.

다른 바텐더의 복장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텐더 견장이 잎파리 4개(경사)에서 무궁화 4개(총경)까지 있다.

궁중무술을 한 그의 얼굴은 갸름하고 다소 우울한 인상. 그러나 그는 제주에서 칵테일쇼를 처음 선보인 주인공이자 바텐더 교관이다. 군대 가기 전, 한 호텔 주방장으로 있는 매형에게 놀러 갔다가 바텐더를 보고 반해 이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 정장 입고 셰이킹(병 돌리기)하는 모습에 반했던 그는 “나도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호텔 바 매니저에게서 3개월간 바텐더 일을 배웠다. 두 달간 설거지만 하고, 컵 닦고, 술 이름을 외웠다.

술 만드는 법을 손바닥에 쓰고 화장실에 가서 메모하면서 배웠다. 군 제대 후 바텐더 책자를 본 그는 서울 바에서 실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전에선 책에서 본 것이 통하지 않았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1997년 신제주 로큰롤 바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바텐더가 되었다.

독학하다시피 7년여 간 익힌 칵테일 수는 수백 종. 머리속에 있는 게 약 500여 종이고, 38종은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칵테일. 그는 칵테일 레시피보다는 경험을 살려 만든 칵테일을 더 좋아한다.

칵테일쇼를 처음 시작할 땐 “잘 보았다”, “멋졌다”, “위노 ‘짱’”이란 말이 듣기 좋았지만, 이젠 가게를 옮겨도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더 셰이커’엔 지난 1월 스카우트돼 왔다. 계약기간은 6개월. “20대가 열매를 맺기 위해 물 주고 거름 주는 과정이라면 30대 중반엔 열매를 따고 싶다”는 그는 내년쯤 작은 가게를 내는 게 꿈이다.

바텐더(Bartender)는 손님과 자신 사이에 놓인 바(Bar)를 부드럽게 관리(Tender)하는 사람.

위노에게 바텐더의 자질을 물었더니 역시 사람관리능력, 품성을 꼽았다.
“주조술, 칵테일쇼, 마술 등은 기술적인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손님을 항상 부드럽고 친절하게 맞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쾌한 손님에게도 미소를 보낼 줄 알아야 해요. 제주지역은 특히 더 그렇죠. 인맥사회거든요.”

가만 있자, 칵테일 메뉴를 보니 ‘뿅가리’, ‘P.S.아이 러브 유’, ‘B-52’, ‘섹스 온 더 비치’ 등등.

“칵테일 이름이 야하다”는 말에 그는 “영업 전략”이라고 웃어 넘겼다. ‘블루 사파이어’ 한 잔에 취했던 기자는 갖가지 주스, 코코넛 크림 등으로 만든 ‘피나콜라다’를 마시고 바를 나왔다. 밤거리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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