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온은 어떻게 사람을 공격하게 됐을까
프리온은 어떻게 사람을 공격하게 됐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살인단백질 이야기' 출간
어딜 가나 광우병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한 지금,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

과학저술가 D.T. 맥스의 '살인단백질 이야기'(김영사 펴냄)는 광우병으로 대표되는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는 '살인단백질' 프리온의 역사와 프리온의 정체를 추적해 온 인류의 이야기다.

프리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광우병 때문이었지만 사실 프리온이 인류사에 등장한 것은 약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65년 11월 베네치아의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존경받던 한 의사가 사망한다. 그는 유럽에서 제일 가는 파도바 의대 출신의 의사였지만 1764년 여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잠을 자지 못해 피로한 상태로 숨을 거뒀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 의사의 후손들은 200여 년간 의사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죽어갔고 이 질병에는 후세에 '치명적가족성불면증'(FFI)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의사가 죽을 무렵 유럽에서는 양떼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유로 쓰러져가고 있었다. 병에 걸린 양들은 주로 꼬리와 등을 피가 나도록 바위나 벽을 긁어대는 증상을 보이다 죽어갔고 이 증상을 따 '스크래피'(scrapie)로 불렸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영국에는 일명 광우병이 소떼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의사 가문 사람들을 괴롭혔던 FFI와 양떼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스크래피, 그리고 광우병의 공통점은 프리온 때문에 발생한 질병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과학자 스탠리 프루시너는 이들 질병의 감염인자가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닌 무생물인 단백질이란 사실을 밝혀내고 이 단백질에 프리온이란 이름을 붙였다.

프리온은 정상단백질이지만 어떤 요인에 의해 변형이 생기면서 치명적인 신경질환을 가져온다.

변형된 프리온을 포함한 세포는 제 기능을 잃고 죽게 되는데 세포가 죽은 자리는 텅 빈 공간만 남게 되고 결국 환자의 뇌조직은 마치 폭격을 당한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가 된다.

책은 프리온의 역사 추적에서 멈추지 않고 프리온 질병을 가져온 인류의 탐욕을 고발한다.

로버트 베이크웰이란 이름의 축산업자는 많은 고기를 얻으려 머리를 썼다. 그 결과 그는 머리는 아주 작고 목은 짧으면서 다리는 가늘고 가슴과 엉덩이는 엄청나게 큰 양을 만들기 위해 우수한 형질을 지닌 어미와 그 새끼를 다시 교배하는 동종교배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했고 그 이후 30여년 후 스크래피가 영국의 양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동물성 사료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19세기 독일 화학자 폰 리비히는 남미의 거대한 가죽 공장들이 버리는 엄청난 양의 소 시체로부터 고단백 쇠고기 추출액을 뽑아내 농축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찌꺼기에 소금과 '고기 섬유질 잉여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혼합해 돼지에게 먹이기 시작했고 이후 이 혼합물은 소와 닭의 먹이로도 쓰였다.

저자 맥스도 역시 변형단백질에 의한 정체불명의 질병을 앓고 있다. 다리와 팔에 힘이 없어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병과 프리온 질병의 공통점은 단백질 변형에 의한 것이라는 것밖에는 없지만 프리온 질병을 완치하는 법을 알아내면 자신의 병도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FFI로 영원히 잠들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가족 등 프리온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한 인간의 탐욕에 몸서리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서운 이야기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는, 내가 지닌 병이 무엇이든 간에 치료법을,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게 되리라"며 프리온 질병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