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들로 보는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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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출간
저널리스트로 마지못해 생계를 꾸리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길 희망했던 20대의 헤밍웨이는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아내가 원고로 꽉 찬 여행가방을 잃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 대부분이 너무 개인적이라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보여주는 것보다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며 원고를 불 속에 던져넣었다.

바이런이 말년에 쓴 회고록은 출판업자가 폭로의 파장을 두려워하며 출간을 망설이던 사이 유족측 변호사에 의해 갈가리 찢기고 만다.

헤밍웨이의 잃어버린 원고, 카프카의 불에 탄 원고, 바이런의 찢어진 원고, 이 밖에 세상에 모든 '사라진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면?
영미문학 저술가인 알렉산더 페히만이 쓴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문학동네 펴냄)은 이렇게 사라진 원고들이 가상의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사라진 책들의 서지학을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실낱같은 존재의 개연성만 있어도 그 책은 얼마든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이 이 도서관의 제명(題銘)이다.

화자로 등장한 도서관의 말단 사서는 도서관에 소장된 발자크, 푸슈킨, 토마스 만, 허먼 멜빌,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등 수많은 작가들의 사라진 책들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합리적인 이유이든, 아니면 예술가의 일시적인 광기 때문이든 스스로 원고를 없앤 작가는 카프카 말고도 더 있다.

토마스 만은 자기 일생일대의 비밀이 드러날 것을 염려해 초기 일기를 태웠고 발자크는 오로지 출판업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두번째 소설인 '시골의사' 초고를 없앴다.

제임스 조이스는 눈병으로 실명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 여러 출판사와의 협상이 소득 없이 끝난 데 대한 좌절감, 생계를 위한 개인교사 일에 대한 싫증 등으로 인해 몇 년간 작업했던 2천 쪽 분량의 '영웅 스티븐'의 원고를 불 속에 던졌다.

사라질 뻔한 이 원고는 다행히도 이를 우연히 목격한 그의 여자친구에 의해 300쪽 가량 '구조'돼 나중에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되살아나게 된다.

작가의 머리 속에만 있다가 책으로 옮겨지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토머스 하디는 어느날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다가 갑자기 등장인물과 배경, 인물들간의 대화까지 완벽한 한편의 소설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나 연필도, 종이도 없어 메모조차 못한 채 가지치기를 마친 후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김라합 옮김. 240쪽. 1만원.(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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