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법정서 다시 만난 살인범과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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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경찰간부 딸 살해 사건' 당사자의 진실공방
 "죽기 전에 한평생 맺힌 억울함 만이라도 풀었으면 더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
36년 전 춘천에서 발생한 '경찰간부의 딸 강간.살해 사건'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가 내려진 이후 처음으로 27일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증인신문이 열려 귀추가 주목된다.

춘천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정성태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제1호 법정에서 이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첫 증인신문을 가졌다.

이날 오규성 판사의 심리로 열린 증인신문에는 재심 청구인 정모(74.당시 36세) 씨를 비롯해 당시 경찰관 2명과 주민 2명 등 4명이 증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특히 36년 전 춘천 초등학생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 간 옥살이를 한 정 씨와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이모(74), 김모(73) 씨 등은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칠순이 다 된 나이로 법정에서 만났지만 서로 외면한 채 심문에만 귀를 기울였다.

이날 오 판사는 당시 수사 과정의 가혹행위로 인해 정 씨가 허위 자백을 했는지 여부와 정 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한 결정적 증거물의 조작 여부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정 씨와 주민 등은 당시의 가혹 행위를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면서 허위 자백을 주장한 반면 수사 경찰관들은 세월이 흘러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입장을 고수한 채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정 씨와 경찰관 김 씨는 이날 1시간 30여 분 가량 걸친 증인신문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면서 수십 년간 깊어진 갈등을 풀기 위한 화해의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정 씨는 "당시 (나를) 고문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 화해하고 싶다"며 김 씨에게 먼저 손을 건넸고 김 씨도 웃으며 정 씨의 손을 맞잡았다.

김 씨는 앞서 법정 내에서 증인 심문을 마치고 방청석으로 돌아가던 중 증인석에 앉아 있던 정 씨를 향해 "죄송합니다"고 말해 주변을 술렁이게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 심문과 진실화해위의 조사 내용 등을 토대로 36년 전 정 씨의 강간치사 사건의 재심 개시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다.

재심 청구인인 정 씨는 1972년 9월 27일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경찰간부의 딸을 살해한 사건의 범인으로 붙잡혀 이듬해 3월 1심인 춘천지법에서 강간치상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이후 정 씨는 같은 해 8월과 11월 서울고법과 대법원에 각각 항소와 상고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돼 15년 간의 옥살이를 한 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가석방 이후 자신의 억울함으로 호소해 온 정 씨는 지난 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 결정에 따라 지난 2월 12일 원심 법원인 춘천지법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춘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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