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씻는 바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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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바다와 강은 감정을 씻어버리는 ‘세심(洗心)’의 장소였던 것 같다.

바다가 있는 해안가 사람들은 바다에서 마음을 씻고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강에서 마음을 씻어왔다.

잊고 싶은 우환이 있거나 증오.원한.시샘.불화를 씻고 싶을 때는 그 사연을 적은 종이로 ‘종이배’를 만들어 강물에 띄워 보내거나 마른 풀로 배를 만들어 그 사연을 적어 바다에 태워 보내왔기 때문이다.

무당들이 불행이나 병환을 낫게 할 때도 마찬가지 의식을 치렀다. 사람들에게 닥쳐올 그 액살에 해당되는 부적을 똘똘 말아 묶어 놓은 다음 바다나 강물에 흘려 보냈던 것이다.

▲요즘엔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출감하는 사람들에게 두부를 먹인다고 하지만, 옛날에는 흐르는 물에 손과 발을 씻게 했다.

고향마을 어귀에 돌아와 흐르는 물가에 오랫동안 서서 손과 발을 씻고 집으로 돌아갔다.

범죄세계에서 벗어난다는 말을 할 때 ‘손 씻는다’고 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처럼 바다와 강물은 우리에게 있어 감정적인 것, 정신적인 것,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씻어 없애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정화작용을 했다.

▲‘심간(心肝)’이란 사람의 ‘참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마음 씻는다는 세심(洗心)이나 세간(洗肝)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중국 북송(北宋) 때 시인 소식(蘇軾)은 ‘강월조아심(江月照我心) 강수세아간(江水洗我肝)’이라고 강가에서 노래했잖은가.

“강에 달이 떠 내 마음을 비추니 강물이 내 마음을 씻는다.”

이처럼 강이나 바다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씻었다.
손을 씻고 직임을 다한다는 ‘세수봉직(洗手奉職)’이란 말이 있듯이 제주바다를 지키던 수군(水軍)들은 바다를 건너기 전에 꼭 바닷물로 손을 씻었다.

▲한국인들은 바다와 강에서는 그 뭣이건 버리면 흘러 사라지고 썩어 문드러져 없어진다는 것이 전통적 사상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바다와 강물은 감정이며 증오며 갈등이며 원한이며 불행이며 불화이며 온갖 오물이며… 그 인간의 악의 요인을 가림없이 포용해서 흘려 보냈고, 또 삭혀 없애왔다.

그런 바다와 강이 갈수록 교활해지기만 하는 인간들의 반역으로 중증의 패혈증을 앓고 있다.

육지부의 강에 가 보아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주 바다도 마치 못된 아들들의 자각을 기다리다 지쳐 누렇게 얼굴이 타버린 어머니 같은 몰골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제주바다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가슴을 씻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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