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있기는 하되 시대가 바뀌어 거의 죽은 말에 가깝다. 농악대나 풍물패가 내세우고 다니는 깃발에나 쓰일 뿐이다.
누구도 그 말이 요즘 사회의 현실감각에 맞는 살아있는 말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농업의 축소가 선진산업국의 전제조건이며 농토라는 건 개발돼야 할 미개지쯤으로 알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자연스런 현상이다.
‘선진도시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절대다수 비농업 국민들의 언어감각에 비추어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무심한 먹거리 현실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식량폭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식량폭동이 발생, 시위대 5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카메룬에서도 식량문제에 따른 폭동으로 수십 명이 죽었고, 아이티 역시 사람이 죽고 총리까지 해임됐다.
식량폭동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도미노처럼 밀려드는 실정이다.
또 식량에 대한 수요 증가와 기후변화, 농지 및 물 부족, 바이오 에너지문제도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다.
호주, 서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등은 기상이변 때마다 식량 생산이 엄청나게 줄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반영했다.
이런 마당에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내 먹거리의 70% 이상은 우리가 생산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단순히 환산하면 식량생산에 거액을 들이기보다는 수출에서 남는 이익으로 식량을 사먹는 게 수지맞는 장사로 보인다.
역대 정권이 밀어부친 정책방향도 이런 계산속과 다름아닐 것이다.
하지만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살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떨 것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멕시코나 중남미, 한 때 식량수출국이었던 필리핀 등이 좋은 예다.
이들 국가의 농업기반은 이후 10여 년 새 완전히 몰락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식량주권을 잃어버린 나머지 강대국에 복종하는 식민지배 상태를 자동적으로 불러왔다.
우리나라도 우루과이라운드 등의 여파로 쌀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없기에 포기 농가가 속출했다.
앞서 1973년 세계 식량파동때와 1980년 냉해를 입었을 때 미국에서 쌀을 사오면서 세계 곡물가격의 3배나 지불했다.
향후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쌀을 수입하겠다는 부당한 조건에서 말이다.
쌀이 가진 경제재로서의 기능은 다른 제품과 달라 자칫 ‘식량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예다.
세계적으로 식량생산이 언제까지든 순조로와 싼 값에 사다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지구환경의 악화는 이같은 기대에 벌써부터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아직은 국제적인 식량무기화 현상이 노정되고 있지 않지만 식량수출국들의 농업생산이 위축되면 언제 수출가격이 급등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지금처럼 먹거리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등은 문제가 심각해진다.
비록 문명이 후퇴하더라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북한의 경우가 그렇다.
‘식량주권’을 튼튼히 확보하는 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을 가르쳤던 조상의 안목이 새삼 다가온다.
옛 말씀 그른 것 하나 없는 법이다.<함성중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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