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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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의 역사는 기원전 유목시대 새로운 목초지로의 이동과정이나 물물 교환, 이민족간 침입 등 인간의 이동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전쟁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이동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유대민족의 길고 긴 유랑은 물론 중세 유럽의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등은 모두 침략전쟁에서 비롯됐다.

전쟁으로 인한 이동현상에서 침략자든 피란민이든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어느 쪽도 여유를 가지고 여행 기분을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은 낯선 땅에서 긴장감이나 피로감에서 벗어나는 어느 순간 문득 생소한 풍경을 주시하게 될 것이다. 그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군인들도 있을 것이고 정든 고향에 언제면 돌아가게 될 지 한숨짓는 피란민도 있을 것이다.

침략자들은 대부분 수많은 문화재를 수탈해 갔다. 그것들은 훗날 자신들의 박물관에 귀중히 소장됐다. 하다 못해 대형 박물관에는 이집트 미라들까지 진열돼 있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발가벗은 채 이를 드러내고 누워 있는 그 미라들을 보노라면 볼모로 잡혀온 포로와 진배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시차적으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기원전 인류를 보면서 신기하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결과적으로 관광일 수 있을 것인가. 전쟁 중 미지의 세계도 보고(?) 전쟁의 흔적과 전리품을 정돈하면 관광상품이 되니까. 관광은 문화이자 상품이다. 평화가 문화라면 별수 없이 전쟁 또한 문화일 수밖에 없다. 또한 평화가 상품이 될 수 있다면 전쟁도 상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무기 거래는 세계 최대의 보이지 않는 교역상품이지 않은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미국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전쟁에 민감한 관광업계는 최대의 피해자다. 항공사들은 노선마다 좌석이 텅텅 비어 감편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에 여간 울상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세계 최대 뉴스전문방송인 CNN은 기다렸다는 듯 화염이 솟구치는 생생한 폭격 장면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 명성과 기술로 얻는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병력과 화력에서 절대 우세한 미국은 자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기자 500명을 미군 부대에 배치시켜 전쟁 상황을 현장에서 취재하도록 허용한 ‘엠베드(embed)’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얼마나 전쟁에 자신있었으면 그런 프로그램까지 동원했을까. 지난 9.11 테러에서 무참히 짓밟혔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팍스아메리카를 실현하기 위한 결정적 포석으로 활용하려 했을까.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반전운동 가운데서도 시시각각 쏟아내고 있는 생생한 전쟁 장면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싸움 구경과 불구경만큼 짜릿한 것도 없지 않은가. 싸움을 말리면서도 오히려 그 광경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하튼 미국은 구식 무기의 재고 처리와 신무기 발표회를 동시에 보여주는 ‘무기 패션쇼’를 연출하고 있고, 세계인들은 TV 화면과 인터넷을 통해 ‘전쟁 관광’을 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전쟁이 없는 곳이라고 조용한 건 아니다. 세계 도처마다 반전운동이 열기를 넘어 또 하나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미국이나 평화를 논하는 반전주의자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일진대 요즘의 국제정세는 말 그대로 혼돈의 양상이다. 갑자기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는 제주관광의 현실이 반갑기도 하지만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통짓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미안한 감이 든다. 평화의 섬이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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