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달갑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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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민족의 명절 추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 말이 있듯이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달라져도 추석은 우리에게 풍성하고 넉넉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지난날을 반추해보면 추석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30~40년 전, 추석빔으로 새 옷과 고무신을 받고 껑충거리며 자랑했던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는 중년층이 적지 않다. 손가락을 꼽으며 추석을 기다리고 마냥 신났던 기억들이 동심의 저편에 남아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에 온갖 맛난 것을 먹을 수 있는 한가위는 이처럼 정겹고 가슴을 설레게 했던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추석이 모두에게 즐거운 날인가? 그렇지 않다.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추석의 분위기가 옛날 같지도 않지만, 추석을 맞는 게 왠지 달갑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짧은 연휴와 늦더위까지 겹친 올 추석의 분위기는 더욱 썰렁하다.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처럼 풍성해야 할 한가위가 어두워 보이는 건 고물가에다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얇아진 서민 가계에 추석은 시름으로 다가왔다. 소득은 줄었는데 물가는 치솟아 추석 준비에 주름살이 늘고 있다. 물가가 많이 올라 제수용품을 필요한 만큼만 적게 구입하고 차례상도 간소하게 차리겠다는 게 대다수 주부들의 말이다. 굳이 추석 물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올 들어 도내 소비자물가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다 금융권의 대출이자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서민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의 경기도 크게 얼어붙었다. 명절 대목이니, 추석 특수니 하는 말들이 도통 들리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올 추석은 ‘寒가위’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청년실업자들이 맞는 추석은 달갑지 않은 것을 넘어 고통스럽다. 서로 흩어져 있던 가족겺C뉘湧?오랜만에 함께 모여 안부를 묻고 담소하는 자리가 그들에겐 ‘가시방석’이나 다름없다. “너 아직 취직 못했냐”는 질문에다 “언제 결혼할꺼냐”는 성화까지…. 그들이 받을 ‘추석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절반 이상이 갈 곳 없는 현실에서 ‘삼팔선(38세 은퇴)’ ‘사오정(45세 정년)’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족)’이 우리 사회에 유행어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무엇보다 명절이 싫은 사람들은 양로원과 고아원 같은 보호시설에 있는 사람들이다. 의탁할 사람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 외로운 그들에게는 명절이라고 시끌벅적한 세상일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경기 불황에다 온정이 메마른 탓인지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위문의 손길도 뚝 끊겼다고 한다.

추석맞이가 달갑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이로인한 고통지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다. 올 추석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 서로 힘을 얻고 가슴 한편에 희망을 심자. 그래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추락하는 경기 지표가 다소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무엇보다 서민 경제에 주름살이 펴지고, 일자리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뭔가 떠들썩하면서도 흐뭇한 그 예전의 명절 분위기가 되살아날 것이 아닌가. 그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오택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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