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발에 오줌 누기’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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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빚이 2915만원이었다.

지금까지의 가계빚 증가 추세 등으로 볼 때 올해 말에 가서는 3600만원 정도 될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이 정도라면 쉽게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은행과 신용카드회사에서 빚진 많은 사람들이 제때 이자를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신용카드 이용자들의 연체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2001년 말에 4.1%에 불과했던 은행계 신용카드 연체율이 지난해 9월 말에는 7.2%로 높아졌고 올 2월 말에는 11.9%로 뛰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용카드를 사용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만도 전국적으로 17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의 숫자가 금융권 전체 신용불량자의 60%를 넘는다.
이 정도라면 우리 사회에 위기를 초래할 심각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는 최근 신용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카드 수수료를 인상하고 이용한도도 단축하도록 했다.

카드 연체자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최장 3년이던 대환대출 기간도 5년으로 연장해 줬다.

또 4월부터는 카드사의 적기시정조치 연체율 기준도 완화해 줄 방침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주기적으로 신용사면을 베푸는 개인 워크아웃제도도 도입했다.

그런데 이 같은 일련의 대책들이 은행과 카드사들을 살리면서 고객들도 신용불량의 멍에를 벗을 수 있도록 하는 해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수수료 인상을 포함한 정부의 신용카드 종합대책 발표 이후 카드사들은 당장 수수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수수료를 단 1%포인트만 올려도 카드사들은 전체적으로 3000억원 정도의 수익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카드사들은 또 돈을 떼일 위험을 줄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용한도를 축소시키고 있다.

단기간에 이를 시행하다 보니 힘겹게 카드 대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 정상 회원들은 대금을 연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수료를 올리면 현금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은 20%가 넘는 수수료를 부담함으로써 또 다른 연체 요인을 안게 되고 이용한도 축소는 새로운 연체자를 양산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결국 이 부담은 고스란히 카드사의 몫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대환대출 기간 연장도 그렇다.
대환대출 기간을 연장해 준 이후 카드업계의 대환대출액이 불과 3개월 만에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는 현재의 부실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5년 이후로 연기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이 대환대출은 신용카드 이용자뿐 아니라 보증을 서준 사람들까지 신용불량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카드 자산의 건전성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하는 적기시정조치 연체율 기준 완화조치도 카드 부실화를 덜어낸다기보다는 오히려 부실을 미루고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신용불량자를 일시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선심성 제도를 도입하거나 고객의 주머니를 털어 카드사의 부실을 줄이는 방안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카드사의 자산건전성을 높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면서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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