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키는 제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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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리장 김성도.김신열 부부...40년전 물질이 인연

경북 울진군 죽변 해안에서 216.8㎞, 울릉도와 87.4㎞ 떨어져 있고 미국 지명위원회의 표기 변경과 영유권 주장으로 수난을 겪은 ‘우리 땅’ 독도는 여러모로 제주와 닮은꼴을 지니고 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우리나라 국토의 극단을 차지하고 있는 점, 풍부한 해양자원, 외세의 침탈에 맞서 싸운 역사 등 다양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제주일보는 창간 63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동쪽 보물 독도를 찾아 독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제주인들의 목소리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주]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삼대에 걸쳐 덕을 쌓은 후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오를 수 있다는 독도.

일본 역사 교과서의 ‘독도 왜곡’ 문제로 늘 한일간 뜨거운 감자인 독도는 한국인이 살고 있는 엄연한 우리 땅이다. 독도 지킴이로 널리 알려진 김성도(68), 김신열(70.여)씨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특히 부인 김씨는 한림읍 강구리가 고향인 제주인이다.

▲ 독도에 정착한 제주해녀 김신열씨(왼쪽)와 남편 김성도씨.

김씨 부부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경북 울릉군 독도리 산20번지(서도)로 독도 최초의 민간인 주민 최종덕씨와 함께 독도에서 지내다 1987년 최씨가 지병으로 숨지자 91년엔 주소지까지 독도로 옮기고 이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다.

김신열씨는 “40년전 돈벌이가 좋다는 말에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며 물질을 하면서 독도와 인연을 맺었다”며 “바다 속에서 채취하는 해삼, 전복, 소라, 미역 등이 똑같아 독도가 마치 고향 제주와 같은 느낌이었다”고 웃는다.

지난해 대기업의 도움으로 담수화 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김씨 부부는 섬 반대편 끝의 샘물인 ‘물골’에서 물을 길어다 쓰던 것을 독도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김 할머니는 “어릴때 ‘물허벅’을 지고 다니듯이 샘물을 양동이에 넣고 바위산을 넘고 경사도가 85도가 넘는 낭떠러지를 오가야 했다”며 “비록 식수와 난방 문제가 힘들긴 하지만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편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함께 왔던 해녀들 40여 명 가운데 울릉도에서 결혼하고 정착한 몇 명만이 현재 남아있는 상태”라며 “제주 해녀들은 조냥정신(절약정신)과 강한 생활력으로 다른 주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 김성도씨는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부인 김씨가 자기가 어릴 때 고향에서 보던 고향 신문사의 기자양반이 찾아온다고 하니 아침부터 유난을 떨어댔다”며 “제주 해녀의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를 갖고 독도를 지키는 부인을 존경한다”고 고백했다.

김 할머니는 “늘 고향 제주와 친척.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며 “고향땅 제주가 언제나 눈에 밟히지만 제2의 고향인 독도에서 여생을 마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나 잊고 지내던 사투리를 조심스레 말해본다며 인터뷰 내내 미소 짓던 김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도 잠시, 벌써 김 할머니의 마음은 고향땅 제주를 향하고 있었다.
<현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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