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경영…세계 최고봉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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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산악인 강태선 대표
‘등산이 바로 인생 그 자체’라고 여기며 삶의 굽이굽이를 산을 오르듯이 한발 한발 내딛으며 국내 최초로 등산복 아웃도어 전문 업체를 창업해 글로벌 경영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제주출신 산악인이자 경영인 강태선 ㈜동진레저 대표이사(58·서귀포시 예래동).

우리나라 등산장비업계의 산증인인 강 대표가 지난 1973년 청계천에서 창업한 등산용품 업체 ‘동진산악’은 35년 동안 자산규모 1000억원, 국내외 700명의 임직원과 연간 매출 1400억원대 규모의 글로벌 중견기업 ㈜동진레저로 성장했다.

그가 히말라야를 넘으며 본 고산 동물 야크를 기억하고 만든 ‘블랙야크(BLACK YAK)’는 현재 전 세계의 200여개의 등산용품 브랜드가 경쟁하는 중국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는 브랜드 파워를 지닌 명품 등산복 아웃도어 제품이다. 강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동진레저 본사에서 제주일보 창간 63주년을 기념해 특별 인터뷰를 갖고 세계 등산용품 시장을 경영하는 최고봉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는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넘어야 했던 성공스토리를 펼쳐 놓았다.【편집자주】



▲ 4전5기의 인생역정

오현고를 졸업한 1968년, 대학진학의 갈림길에서 돈을 벌기위해 남대문에서 옷 도매장사를 하던 이모집에서 장사공부를 결심한 그는 2년간 생산과 유통 자재, 경리 자금의 모든 부분을 관리하며 장사에 대한 자신감을 쌓았다.

1971년 독립한 그는 동대문에서 지금은 작고한 청바지 업체 ‘뱅뱅’의 창업주와 함께 청바지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 시중에 나온 청바지는 미국 구호물자로 전부 중고였던 점에 착안해 가짜 미국산 청바지 생산과 판매를 시작했고 만들면 다 팔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만들어 미국산 가짜 상표를 붙여 판 청바지는 국내에서 처음 만든 청바지 1호였다.

그러나 당국의 가짜 상표 단속이 강화되자 그는 1년만에 그만두고 평소에 좋아하던 산을 오르며 등산장비 판매에 관심을 기울였다.

1973년 2월1일 청계 5가에 ‘동진산악’이라는 상호를 걸고 그가 만들어 판매한 텐트와 배낭 등 등산장비는 국내산 최초의 등산장비이다.

장사에 자신을 갖고 시작한 그도 신용거래에 대한 공력이 얕아 외상거래가 쌓이면서 3년만인 1976년 부도를 맞아야 했다.

이후 그는 ‘프로 자이언트’라는 등산용품 상표로 다시 일어섰으나 1979년 10·26사태 이후 비상계엄과 통금이 생기면서 등산용품시장은 된서리를 맞았다.

어려울때 마다 산을 오르던 그는 ‘거봉산악회’를 조직하고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산악인으로 성장하게 될 엄홍길과 조우하게 된다. 그는 “당시 엄홍길은 고교2년 생이었고 1년 뒤 거봉산악회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후 1981년 통금이 해제되자 그는 ‘무박산행’이라는 상품을 내걸고 전국의 산을 올랐다.

‘무박산행’은 코펠과 텐트, 베낭 등 등산용품을 불티나게 팔려나가게 한 히트상품이었다.

1991년 산에서 야영과 취사금지가 이뤄지자 등산장비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고 중국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고자 1993년에 투자해 설립한 중국 생산공장도 실패했다.

그는 외환위기의 한파가 몰아친 1998년 주위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웃도어 시장이 생소한 중국 베이징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1999년 1월 과감하게 블랙야크 판매점을 열었다.

중국 최초의 아웃도어 전문매장이었다. 10년이 지난 결과 블랙야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첫 이벤트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성화를 올리는 마지막 남녀주자들이 입어 큰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프로산악인 강태선

산과의 인연은 1963년 중문중학교시절 한라산 영실코스를 등반하며 눈앞에 펼쳐진 기암절벽과 오백장군의 기상을 보며 산에 매료되면서 비롯됐다.

고교시절에는 아마추어 산악인이 된 그는 졸업후 서울에 온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산을 올랐고 산악회 활동으로 이어져 대한산악연맹 최연소 이사가 되기도 했다.

그가 등산장비 제작 판매에 뛰어든 것도 1968년 10명의 청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설악산 죽음의 계곡 눈사태때 현장을 지켜보면서 장비의 부족으로 구조작업이 순조롭지 못한데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주출신이면서도 그는 현재 10년째 서울시 산악연맹회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대한산악연맹부회장을 10여년간 역임했으며 국립공원 관리공단 자문위원, (사)한국스카우트 서울남부 연맹장, 자연보호중앙회 명예총재로 있다.

1983년 4807m의 몽블랑 최고봉에 오른 그는 1993년 초오유(8091m), 시샤팡마(8027m)원정대 단장, 1997년 안나푸르나(8091m), 칸첸중가(8586m)원정대 대장으로 엄홍길과 함께 했다.

그가 초오유와 시샤팡마를 오르면서 처음 본 야크에 매료된 그는 바로 블랙야크라는 제품 브랜드를 개발하고 이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검은 색 등산복을 유행시키며 산의 패션을 바꿔놓기도 했다.

2000년에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대 단장, 2002년 재미연맹 합동 미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봉(4417m)원정대 단장으로 성공적인 등반을 이끈데 이어 2003년 서울티벳 합동 에베레스트(8848m)원정대 대장으로 세계 최고봉에 오른 프로 산악인이다.

2006년에는 정부에서 수여한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제주출신으로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폐휴대폰 수거운동 공로로 환경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글로벌 경영의 꿈

그는 “산과 기업경영은 닮은 꼴”이라며 “남을 앞지르려면 몇배로 힘들고 잠시 쉬다보면 쉽게 따라잡히고…, 경영도 산과 마찬가지로 한발 한발 체력 안배를 해가면서 나가야 멀리 높이 오를 수있고 바람과 눈보라 절벽을 극복해야 하는 것 처럼 자금조달 생산성 향상 등 넘어야 할 장애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또 “언제 닥칠지 모를 그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야한다는 점에서 산과 기업경영,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도 강조했다.

그는 “등반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그의 말 처럼 그는 항상 산을 오르는 도전 정신으로 삶을 개척하고 기업을 경영해왔다.

1973년 청계5가에 10평의 공장과 3평의 점포로 직원 3명과 함께 시작한 등산장비 생산판매업체 동진산악은 1994년 ㈜동진레저로 상호를 변경한 후 프랑스 스위스 일본 싱가폴 홍콩 대만 뉴질랜드 등지로 등산장비를 수출하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그가 제작한 브랜드 블랙야크(BLACK YAK)를 중국 일본 유럽에 상표등록했고 2010년까지는 미국에도 진출해 명실상부한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다는 야심찬 꿈을 갖고 있다.

현재 블랙야크는 중국 시장에서는 가장 먼저 진출한 선점효과로 세계 1위의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지만 국내에서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선 아직 1위를 못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1위를 하고 있으니 아시아 시장에서 1위는 시간문제”라며 “이를 바탕으로 아웃도어의 본고장인 미국과 유럽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고향 제주에 대한 애정

그는 “열 살 때의 맛과 기억이 가장 수순하고 오래 남는 것 같다”며 “고향 제주를 떠나온 지 40년이 다 돼 가지만 내 마음은 항상 제주를 향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매해 그가 연맹장으로 있는 서울 남부 스카우트 대회를 제주에서 개최하고 기회만 되면 제주 한라산에서 전국 등반대회를 개최해왔다.

재경 제주도민회 장학회 활동도 10여년을 해오고 재경 오현고 장학재단을 주도해 만들었으며 재경 서귀포시우회장으로 수도권에 사는 서귀포 고향사람들의 중심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주도의 앞날에 대한 걱정도 가득하다.

그는 “10년간 제주도가 많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깝다”며 “국제자유도시다. 제주특별자치도다 하고 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지 않느냐”고 걱정한다.

그는 “특히 글로벌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을 가져야 하는데 제주도 공무원들은 그런면에서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며 “구호만 외치고 전시행정으로 성과가 없다면 기업에서는 무능력자로 퇴출대상 1순위”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를 보면 기대치는 높은데 그 기대에 걸맞는 실력과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 더 안쓰럽다”며 “하와이와 제주도의 관광객 수는 거의 비슷한데 주민들의 삶의 질은 천양지차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하와이는 한번 체류하면 4박5일이 되도록 설계된 반면 제주도는 1박2일이면 할 것도 볼 것도 없도록 만들어 놓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서울=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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