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 존경하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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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저를 잘 이해해주는 어느 공직자로부터 전화와 팩스를 받았습니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계에서 전국에 배포하는 주보에 저와 관련된 신부님의 칼럼이 있었다며 그 글을 보내왔습니다.

신부님의 칼럼을 읽고 깊은 반성을 하면서 저의 부족함을 자탄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일간지에 실렸던 저의 글을 읽으시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반인과 과학도에게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셨던 것입니다. 특히 저의 글 중 “과학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기업에 효자상품을 제공하며, 국가에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은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어야지 철학을 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사여구보다 국민을 먹여 살릴 과학이어야 한다”라는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과학자만이 우리 국민을 위하는 양 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연구하는 철학을 “미사여구”라는 말로 폄하고, 학문의 순수성을 부정하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 것은 물질만능주의에 얼마나 물들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신부님의 지적은 적절한 것이며 부족한 인간을 계도하는 올바른 역할이십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앞으로는 제 자신을 돌아보며 자책의 채찍을 가하고 사려깊은 언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제가 심취한 교회의 말씀과 하느님의 가르치심 중에는 화해와 용서 그리고 ‘내 탓이오’가 큰 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죽 잘못했으면 평범한 시민도 아닌 성직자께서 용서와 포용을 하지 못하고 준엄한 꾸지람을 내리셨을까 생각하면 더욱 괴로워집니다.

신부님, 만일 용서하신다면 지적하신 글귀에 담으려 했던 저의 의도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과학은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어야지 철학을 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한 “철학”은 학문적 분류로서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과학자들이 ‘입으로만의 연구’가 아니라 가시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실질적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철학만 논하고 있는 ‘과학쟁이’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자성의 뜻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영혼을 맑고 밝게 비추는 역할이 종교와 철학이 담당하는 위대한 영역이라 믿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을 먹여 살리는 1차 담당자는 농민, 노동자, 금융, 서비스업 등 다양한 직업이라고 봅니다. 과학기술은 산업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예산만 축내는 골치덩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을 먹여 살릴 실용적 연구에 매진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미사여구보다 국민을 먹여 살릴 과학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글재주가 없어서 잘못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가르치심의 대상이 된 저는 이를 교훈으로 삼아 정진하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오랜 기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십시오.

먼훗날 신부님 앞에 고개숙여 인사 올리는 저에게 “신의 은총이 충만하길…”이라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어깨를 다독거리며 “당신의 연구업적과 걸어온 길은 인류에게 귀중한 선물이었네”라고 격려해주실 그날을 향해 가겠습니다.

신부님, 하지만 과학은 국민을 먹여 살릴 과학이어야 한다는 제 소신은 그대로 간직해도 되겠지요?

신부님과 교회 그리고 온 국민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내리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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