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의 진정한 용기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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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와 국회에 이라크전쟁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사실 전쟁은 명분이 있든 없든 모두에게 비극이다. 굳이 명분을 따지자면 명분없는 전쟁은 없다.

지금 매스컴이 보도하는 바로는 이라크전쟁에서 연합군이 명분에서 좀 밀리는 것 같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와 시민단체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연대해서 전쟁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극렬한 반전.반미시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반전.반미를 하는 나라들의 면면을 볼 때 반전의 동기가 썩 석연치 않다. 숭고한 인간 사랑의 순수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반전 주장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음흉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후세인과의 밀실 에너지 장기채광계약 파기라는 경제적 손실의 위기를 우회적으로 대처하는 투쟁방법이 반전.반미로 형태 변화해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반전.반미를 주장한 프랑스나 독일이 요즘 들어 좀 어색한 태도 전환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다극주의를 주장하면서 다극주의의 공동 맹주로 나섰던 프랑스와 독일, 그렇게 통렬하게 미국을 비난하더니 갑자기 돌변해 “미국은 우리의 친구”라는 낯간지러운 표현을 써가며 미국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프랑스 르몽드지의 사장 장 마리 콜롱바니는 ‘아니오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1면 칼럼을 통해 점잖은 충고를 하였다. 콜롱바니는 이 칼럼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반발외교에 머물러서는 아니된다. 지배적 대중여론의 표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우리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우방으로 확신할 것인가.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떤 우방인가. 이 시점에서 미국 독트린에 대한 대응전략도, 충분한 군사력도 없지 않은가. 미국에 대한 반발외교를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서, 반발로 인한 모든 결과를 충분히 계산했는가”라고 프랑스 정부의 외교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프랑스와 독일이 외교전략을 조심스럽고 발빠르게 수정하는 것과 연관이 있음직하다.

엊그제 국회의사당 앞 반전과 평화를 위한 시위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시위대의 전투적 과격함에 소름이 끼쳤다.

증오심으로 불타오르는 표정, 앞뒤를 안 가리는 과격한 구호들, ‘저 사람들이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인가’라는 곤혹스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라크의 죄없는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면서 존엄한 인간 생명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포악한 전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농축된 행동이라고 억지로 해석하였다.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에서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쟁반대 의견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한 일이며, 어떠한 질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회 앞 군중의 과격시위마저 어쩌면 용기있는 행동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고뇌에 찬 결단으로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대통령의 뜻에 맞서서 위험부담까지 무릅쓰면서 저 먼 나라의 국민들, 특히 부녀자와 아이들의 인권과 생명 보전을 그렇게 힘주어 주장하는 이들이, 그리고 인류의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일을 마치 독점이나 한 것처럼 자부하는 이들이 당장 지척에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부녀자들 및 어린이들(약 1000만명.유니세프 자료)과 가혹한 고초를 당하는 수만명의 정치범, 순간마다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실제로 잡혀 죽고 있는 동족 탈북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비열할 만큼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인권위와, 평화와 인권을 주장하며 폭력시위마저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진정으로 신선한 용기를 보고 싶다.

우려와 불안의 반복 속에서 1개월여 달려온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만의 옳은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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