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으며 오늘도 축복의 단비처럼 온 섬의 대지를 솔솔 적시고 있는 바람. 여기엔 필시 감미로움, 절제.공포의 미, 긴장감이 내재돼있다. 자유도 깃들어있다.
이 무색무취의 공기흐름이 눈에 읽힌다. 김해곤 섬아트문화연구소장이 14~27일 제주산업정보대학 창업보육센터 야외잔디광장에서 여는 바람예술전 ‘깃발의 시(詩)’는 바람을 시각화한 무대. 눈빛과 몸짓 때론 격렬한 충돌을 통해 변화무쌍한 형상을 자아내는 바람이 포착된다.
‘바람은 영혼의 세계에서 시를 쓰고 시간 흔적을 기록하며 생명을 잉태시킨다. 인간과 자연을 화해시키고 때론 시련과 아픔을 남긴다. 바람 속엔 늘 사랑 평화가 공존한다.’(작가노트)
바람은, 깃발이란 매체를 통해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사위의 바람이 대나무에 걸린 무수한 천을 시시각각 다변화한 형상으로 퍼포밍할 때 인간에게 포착돼 감동을 자아내는 거다. 생동.역동이 폭발하는 가운데 바람 결은 균질.혼돈을 반복, 깃발화면을 천변만화시킨다.
전시작은 깃발 대형 설치작품 6점. 전시기간 후에도 작품들은 얼마간 잔디광장에 계속 설치될 예정이다. 김 소장은 “깃발의 올까지 풀려 휘날리는 모습에서 바람의 모습이 더욱 명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한 후, “내년엔 ‘바람예술전-바람 소리’를 열겠다”고 귀띔했다.
#‘부표-滿’=수면에 띄우는 항로표지 부표를 새롭게 해석했다. 만선기를 차용, 노랑 초록 빨강 파랑 등 사계별 색채의 깃발 수십 개를 세워 풍요, 결실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스카이 카펫’=레드 카펫과 블루 카펫이 공중을 장식한다. 붉은 전면과 파란 후면이 겹쳐 햇살 비칠 땐 살짝 보랏빛을 띠어 영롱하다. 바람에 나부끼면 나비군단의 비행이 연출된다.
#‘기(氣)’=뿌리는 하얗고 줄기와 잎으로 갈수록 녹색을 띠는 나무가 깃발로 형상화됐다. 깃발사이를 지날 때 천의 사각거림을 듣고 부드러운 감촉도 느낄 수 있다. 속칭 ‘깃발욕’이다.
#‘모뉴먼트’=바람흐름과 방향을 눈으로 체감할 수 있는 2점의 모뉴먼트다. 색과 빛의 3원색이 사용됐다. 하나는 노랑, 파랑색의 피라미드 모양이고 다른 것은 붉고 역삼각형 구조다.
#‘유영(遊泳)’=솟대와 물고기 형상 조형작품으로, 물고기들이 솟대를 타고 뭍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다. 물 밖 세상을 향한 물고기의 동경심이 해소되는 데서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플라워(Flower)’=생명의 탄생 혹은 화산 분출을 연상시키는 군집깃발이다. 상단의 주황은 꽃잎 또는 에너지 분출이고, 중단은 잎사귀를 표현했다. 하단은 대지 또는 기운을 상징한다.
문의 011-686-3262.
<김현종 기자>tazan@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