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부르는 제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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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이 오면 제주에는 왕벚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지난 주말 제주시에서는 2003제주봄대축제 ‘왕벚꽃.유채꽃잔치’가 펼쳐졌고, 서귀포시에서는 ‘칠십리국제걷기대회’가 열렸다. 화창한 봄날에 꽃잔치를 벌이고, 상큼한 봄 향기를 맡으면서 해안을 걷는다는 것은 여간 매혹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주의 봄이 그렇게 화사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누구나 웃음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

해방 이후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제주인의 10%나 되는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제주4.3사건은 제주의 봄을 아리게 한다. 누군가는 말하리라. 이제는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그리고 어쩌려고 또다시 가슴 아픈 기억을 되살리느냐고. 이제는 그런 것 다 잊고 해원과 상생, 그리고 인권과 평화만 논의하자고.

하지만 진정한 해원과 상생이 이뤄지려면 4.3 희생자, 유가족, 그리고 제주도민들의 명예 회복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주가 진정한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되려면 4.3의 아픔을 잊어선 안 된다. 제주도가 동북아시아의 중심지이고, 정상회담을 했던 장소라는 이유만으로 ‘평화의 섬’이 될 수는 없다.

6개월이라는 유보기간이 있긴 하지만 4.3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다. 보고서를 통해 제주가 더 이상 반역의 섬이 아니고, 4.3은 더 이상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55년 동안 도민들을 짓눌러 왔던 ‘레드 콤플렉스’로부터 이제야 벗어나게 된 것이다.

제주가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되려면 4.3의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젊은 세대들과 관광객들은 4.3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그토록 아름다운 제주에 그런 슬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제주도가 자주와 인권과 평화의 성지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4.3은 제주의 큰 자산이 돼야 하고 더 나아가 우리 민족과 인류의 큰 자산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 그리고 제주의 4월은 달라져야 한다. 한쪽에선 검은 리본을 달고 4.3 추모행사를 하고, 다른 한쪽에선 흥겹게 꽃잔치를 벌이는 아이러니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4월에 벌이는 꽃잔치가 더 이상 봄의 아름다움만 만끽하는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제주의 4월은 해원과 상생, 인권과 평화의 축제기간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꽃 그늘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해안을 거닐고, 오름에서 고사리를 꺾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왕벚나무 아래서, 그리고 그윽한 향이 풍기는 유채꽃밭에서 ‘인권가요제’를 열어보자.

그리고 왕벚꽃길을 지나고 유채꽃길을 달려서 4.3 유적지를 돌아오는 ‘평화마라톤’을 개최하자. 그리고 고사리를 꺾으면서 4.3과 제주 역사와 사투리를 주제로 ‘골든벨’을 울려보는 것은 어떤가.

제주 어디엔들 4.3의 역사가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있는가. 수많은 관광객들과 수학여행단에게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만 보여주지 말고 우리의 아픈 역사도 이야기해주자. 그래서 다시는 이 땅에서 인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굳이 평화의 섬이라고 외치지 않더라도 그들이 스스로 제주야말로 평화의 섬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도록 하자.

4월에 부르는 제주의 노래는 해원, 상생의 메아리면서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라야 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사와 인류사에서 그런 엄청난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다짐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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