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은 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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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강 록산 T.S.M㈜ 이사
몇 년전 제주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김순남 시인의 ‘돌아오지 않는 외출’ 출간시집을 보내왔다. 시를 읽으면서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무게를 느꼈다.

1972년 늦가을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관덕정 우체국과 나란히 서 있던 4층 대형건물이 있었다.

1층은 명함과 인장을 새기는 심임당 간판, 그 2층에 회심다방이 있었다. 늘 찾는 다방에 가면 구석 의자에 앉아 시를 습작하고 책을 읽는 20세 여자를 보았다. 단발머리에 왜소한 모습 그녀와 첫 인연이었다. 조금 시일이 지나 문학하시는 분을 소개해 달라하여 소설가 오성찬씨를 소개해 준 기억이 난다. 시인으로 등단하기 퍽 어려웠던 90년초 결국 그녀는 시인이 되었다.

해마다 신년 초가 되면 작가를 지망하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된다. 시, 소설, 희곡 등 등용문을 통과한 신인들은 자기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해 거목밑에 둥지를 튼다. 독자층이 많은 시, 소설은 문자에 의한 기록문학으로 구분되며 이 중에는 시와 산문은 순수문학, 대중문학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시는 여러 부분으로 정형시, 산문시, 서사시, 서정시가 있다. 소설과 다른 시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의 표현이다.

그 대상은 하나의 세계 우주만물 자연 인간이 대상을 이용하지만 시인은 그를 통해 우리가 먹고 사는 욕망의 집합체 사회를 보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각자 다른 방법의 틀을 가진 사람이 시인이다. 시작은 머리로 하는것도 아니며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몸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온 몸에 의한 온몸이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다.

60,70년대 신춘문예 등단이 별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문인사관 학교로 불리는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나 국문, 영문 전공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제주문학생들은 전국에 명성을 떨치는 시인들로부터 지도를 받을 수 없었다.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쓰고 찢고 수백번 습작 후 이 그림을 사상계 현대문학에 추천받기 어려웠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대에 책상에 앉아 시를 쓰는 것은 호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의,식,주가 예전보다 넉넉해지자 문학동인들 동아리를 구성하여 시를 쓰고 시낭송 등 예비 시인의 길을 가고 있다. 등단의 여건도 좋아졌다. 월간 시와 세계, 문학 동네, 계간비평 등 수없는 문학지가 발간되면서 많은 시인을 추천되어 등단되고 있다. 어떤 원로시인은 1년에 새끼시인 134명을 배출했다고 한다. 그게 문학인가 바퀴벌레 알까는거지 냉소하는 작가도 있다. 올해가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소년지에 발표된 지 꼭 100년이다. 모 일간지가 기념삼아 현대시 100선, 시인 100선, 애송시 100선 등 주옥같은 시가 연재되었다. 민초들이 기쁠 때 슬플 때 흥얼거리던 시다. 이 시를 보면서 제주문단도 중앙문단 유명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시인이 배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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