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산책로에서 만난 질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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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석굴암은 경주의 석굴암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천왕사 산자락을 따라 굴곡이 심한 오밀조밀한 길을 걷다 보면 사방이 온통 숲이어서 맑은 공기, 상쾌한 숲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그래서 산책로에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길목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질경이를 만났다.

원래 질경이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질경이는 마을 안길에 지천으로 살았다. 아마 그래서 “산중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질경이를 발견하면 인가가 가깝다”는 옛말이 생긴 것이리라.

질경이는 질경이과에 속하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 이는 민들레와 같은 로제트 식물로서 원줄기는 없고 많은 잎이 뿌리에서 나와 비스듬히 넓게 퍼진다. 6~8월 이삭 모양의 하얀 꽃이 달린다. 10월께 흑갈색의 자잘한 씨앗이 익는다. 씨는 고리 모양이어서 사람의 바짓가랑이에 쉽게 매달릴 수 있다.

이 씨는 바지에 달라붙었다가 이를 터는 사람들의 손놀림에 의해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간다.

질경이는 다른 식물과 식생이 판이하다. 일반적으로 질경이는 사람이나 가축의 통행이 잦은 길가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그것도 왕래가 빈번할수록 질경이는 더 잘 자란다.

사람들의 왕래가 드믄 숲속을 조사해 보았다. 교목과 관목을 비롯하여 덩굴과 풀잎 등 각종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흔한 질경이를 수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질경이 씨앗은 인적이 드믄 수풀에도 전해질 텐데 말이다.
어째서 숲에서는 질경이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한참 궁리하다 “숲에서는 다른 식물과 생존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라는 가정을 해 보았다. 살기 좋은 터전에는 항상 지독한 경쟁과 참을성이 있는 공존의 원리만이 존재한다. 결국 이러한 경쟁과 공존이 싫으면 열악한 환경조건에 적응해 나가는 방식이 유일한 선택이요, 진화의 방향이 아닐까?

사람이 발길에 짓밟히는 것은 질경이로서는 위협받을 요인이 아니다. 그것은 좀처럼 파괴되지 않는 질긴 섬유질의 유관속 다발과 탱글탱글한 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질경이에는 밟히면서 살아가는 끊기가 있다. 얼마나 질긴 목숨이기에 질경이라 했을까? 이 질경이의 성깔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다.

석굴암 올라가는 길목에서 만난 질경이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질경이의 삶을 이 아이들에게 탐구하게 하자. 질경이의 삶은 밟히면서 이룩된다. 그러나 질경이는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 여정에는 많은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질경이처럼 짓밟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딛고 일어설 줄 아는 그 의지력이, 이러한 삶의 체험이 중요함을 오늘에 와서 더 가까이 다가옴을 어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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