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가슴 멍들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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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이맘때쯤 가져다 붙이는 식상한 말이지만, 2008년 역시 이 단어 외에 달리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어느덧 무자년 한 해가 긴 그림자를 남긴 채 저물고 있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끼게 하는 때이다.

여느 해도 그렇겠지만, 올해는 특히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다. 수많은 이슈들 가운데 단연 으뜸은 ‘경제’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으로 희망을 안고 출발한 한 해였지만 경기 불황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자고 나면 들려오는 ‘폭락’에 ‘사상 최악’이니, ‘패닉’이니 하는 말들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도대체 불황의 끝은 어디인지, 한겨울을 맞는 서민들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세모의 문턱, 사람들의 가슴엔 또 하나 멍이 들었다. 바로 연이어 터지는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패 때문이다. 얼마 전 도내 한 60대 여성농민이 이른바 ‘쌀 직불금’ 문제에 대해 본지에 기고를 했다. 그는 “가짜 농민들이 바짝 마른 농민들의 등골을 빼먹었다”며 “살다보니 이런 해괴망측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망연자실 일손을 놓고 있다”고 절절히 썼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 먹지, 강남에 사는 재력가들에게, 높은 지위에 있는 공직자들에게 그것도 돈일까.

국가보조금을 관리 감독하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할 상당수 공무원들도 혈세를 빼 먹는데는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 듯 잽쌌다. 하여튼 “눈 먼 돈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도덕적 불감증이 판을 치고 있다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올 한 해 제주 공직사회도 ‘눈 먼 돈’ 앞에 혈안이 되고 넋을 잃었다. 각종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2008년 제주 공직사회를 보며 그래도 조금은 깨끗할 것이라는 기대를 무참하게도 접게 만들었다.

2007년 9월 제주에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남긴 태풍 ‘나리’는 지금 재난기금 파문으로 또다시 도민사회를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경찰 수사로 속속 드러난 재난기금의 횡령 수법 앞에 말문이 막힌다. 태풍 나리는 제주를 두 번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첫 번째 피해는 세월이 흘러 제모습을 찾고 있지만, 이제 터진 각종 비리의 수법과 행위를 보면 도민의 공복인지, 범죄 집단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다.

어디 그 뿐일까. 건설현장 감독 차량비를 그저 관행이라며 사용한 공무원들이 적발돼 무더기로 기소유예되는가 하면 무형문화재 보조금 비리와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금품수수, 상하수도 공무원의 뇌물수수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지면을 장식했다.

이처럼 2008년 공직사회는 각종 비리와 부패로 얼룩졌다. 도정은 시대변화를 강조하고 청렴.선진화를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그러면서 ‘뉴제주운동’을 전개하며 도민사회를 계도하겠다고 하니 어디 앞뒤가 맞는 말인가.

공직 부패는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특히 공직자 비중이 높은 제주사회는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경기불황에 몸서리치는 서민들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하지 않도록 공직 부패를 악의 축으로 다스려야 한다. 제도적인 단속이나 조치도 중요하지만 공직자들의 양심과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고선 공직사회가‘비리 온상’ ‘철밥통’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도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것임을 거듭 명심할 일이다. 이를 계기로 ‘청렴제주’에 걸맞는 새로운 질서가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오택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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