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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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나는 장편소설 ‘불의 나라’ ‘물의 나라’를 연작으로 썼다.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나를 가리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 작품을 쓰던 때는 80년대 초반으로서 정치적인 억압과 아울러 개발 이데올로기가 사회는 물론 개인의 삶까지 송두리째 관통하던 시절이었다.

아는 바와 같이, ‘불’은 전투력의 상징이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빠른 성장을 거듭해 온 것은 불같은 열정으로 불같이 뜨겁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웠던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완전히 ‘불의 나라’로 탈바꿈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항문 근처에 불이 붙은 채 ‘앗 뜨거, 앗 뜨거!’하면서 일제히 내달리는 형국이 됐다. 출발하는 지점에선 각자 품고 있던 꿈의 빛깔이 달랐을테지만, 뜨겁게 담근질을 당하면서 내달리다보면 애당초 품었던 고유한 꿈은 저리 가라, 그저 남보다 앞서 달리는 자만을 뒤쫓아 허겁지겁 쫓아가는 획일적 서열경쟁만이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고 만 셈이다.

그에 비해 ‘물’은 생명의 표상이다. 물은 낮은데로 낮은데로 흘러 모든 서열을 무화시켜 마침내 수평을 이루고, 한없이 부드러우며, 포용성이 높다. ‘불’이 남성성이라 한다면 ‘물’은 당연지사 여성성이자 모성의 기호이다.

지난 반세기, 대를 물려온 가난의 사슬을 끊어낸 원동력이 ‘불의 정신’이었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그늘의 대부분은 그로 인해 ‘물의 정신’이 부족해졌다는데 그 연유가 있다고 본다. ‘불‘이 지나치게 승(勝)하면 ‘물’이 말라버려 토양이 산성화되고 사막화되는게 당연하다. ‘불’과 ‘물’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양면의 통합, 혹은 균형일 터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이런 논리의 극명한 텍스트로 삼아 좋을 분이다. 그는 ‘불의 정신’이 사회의 핵심동력이었던 개발시대에 그 개발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불같이 일함으로써 ‘30대 회장’이라는 성공신화를 이루어낸 분이다.

그런데 정치판으로 옮겨간 후 그분의 성공신화는 ‘물’로 쓰여지고 있다. 시멘트 감옥에서 해방된 청계천을 보라. 청계천 복원으로 그분은 성공적인 서울시장이 되었고, 그것으로 기반을 쌓은 뒤에 ‘대운하 공약’을 보태어 마침내 대통령으로 도약했다. 애당초 청계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를 건설할 때 현대건설의 주역으로 그분이 기여했고 청계천 복원사업 또한 그분이 앞장서 해냈으니, 결자해지(結者解之)라, 당신이 덮은 청계천을 당신이 벗겨낸 바, 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아이러니컬하면서 절묘한 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야말로 유례없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이’라고 할 만하다.

각설(却說)하고. 4대강 정비사업이 식을 줄 알았던 대운하문제를 논쟁의 중심으로 재점화시켰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4대강’이든 ‘대운하’든 직설법으로 왈가불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충언하고 싶은 것은 물에 대한 사업은 ‘물’과 상의하고 ‘물의 영혼’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치수사업이란 수 천만년 굽이쳐 흘러온 물줄기를 겨우 강제로 펴놓는 식의 반환경적인 사업이 대세였다.

어쨌든, 대통령은 어떤 분인가.

인생의 전반기에서 그분은 ‘불의 아들’로 살았고, 인생의 후반기에서 그 분은 ‘물의 아들’이 되고자 한다. 곳간만 쟁여놓는다고 삶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경제를 살리는 일 못지않게 지금 중요한 것이 ‘물의 정신’이라고 할 때, 그분은 정말, 청계천, 대운하, 4대강이 표상하는 바, ‘물의 아들’로 변모했는가, 나는 그게 궁금하다.

그분은 어쩌면 ‘불’같았던 젊은 날로부터 한발자국도 걸어나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걱정이다. ‘물’을 ‘불’의 방법으로만 다루면 부작용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과 ‘물’의 조화나 균형이 없다면 세상은 계속 사막화가 진행될 것이다. 이 사막화의 세상에 맑은 ‘샘물’을 끌어오는 대통령이 되어야 마지막 성공신화를 쓸 수 있다.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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