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부족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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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해서 대학원생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따듯했다. 보일러가 가동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아침시간에 이렇게 따듯하다는 것은 학생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공부를 했던지 아니면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학생에게 물었다. “밤 새웠니?” 학생의 답은 “할 일이 있어서요.”였다. 질문은 밤을 새웠는지 아닌지를 물은 것이니 답은 ‘예’ 또는 ‘아니오’ 이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은 내 질문에 한 단계 더 뛰어서 그 다음 질문에 답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 나는 넘겨짚지 말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하라고 가르친다.

연구실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치자. 학생에게 “왜 그랬니?”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잘못했습니다.” 또는 “앞으로 안 그렇겠습니다.”로 답한다. 나는 이유를 물은 것인데 학생은 반성 또는 각오를 답한 것이다. Why에 대한 답은 Because로 시작해야 논리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논리적 비약(Logical jump)을 한 것이다. 그런데 흔히 그렇다.

자동차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고 치자. 운전자가 나와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우선인데 진입하셨습니다.”, “빨강색 신호등에서 진입하셨습니다.” 등의 말은 정상적이다. 그러나 “너 몇 살이야?”는 정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와 같이 질문의 내용을 넘어서서 미리 넘겨짚어서 답을 하거나, 종합적인 판단 끝에 밑도끝도 없이 “너 나쁜 놈이야!”하는 식으로 단정해 버리는 화법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교실에서 학생 2명이 싸웠다고 치자. 교사가 학생을 모두 불러서 얘기를 들어보고 잘잘못을 가리고 잘못한 아이에게 벌을 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2명을 모두 불러서 소란을 피웠다고 모두 혼내고 모두 벌을 준다. 그중 문제를 야기한 학생은 억울할 것이 없지만 정당하게 화낼 일에 화를 냈다가 벌을 받은 학생은 억울할 것이다. 해서 몇 마디 하려고 하다가 토를 단다고 더 혼난다. 성장과정에서 이렇게 양육된다면,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잘못했다고 빌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이 매를 피하는 방법임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넘겨짚고 답하지 말라고 하거나 말할 때 논리적 비약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분명 우리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까다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위에서 예를 들은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통용되는 정도의 논리적 비약이고 넘겨짚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방식의 화법에 익숙해지면 다른 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서 논리적인 표현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제주에서 열리는 여러 가지 회의에서 흔히 이런 사람들을 접한다. 이런 사람들이 작성한 안건은 내용파악이 안된다. 장황하기는 한데 요지가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로 부실하게 설명하고서도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해한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글만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삶도 그렇게 산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 것인지 대학원을 진학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도 장단점을 각각 따져보고 미래의 발전가능성을 따져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에 따라서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또 대학원에 들어가도 어떤 전공을 택할지 또 어떤 지도교수를 택할지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친한 선배 따라가는 식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기분’이 가장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된다. 분석을 통해서 장점과 단점으로 구분해서 생각하고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판단을 하기 보다는 총괄적으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단번에 판단을 해 낸다. 이것은 이성을 거치지 않은 판단이다. 이성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파악된 상황을 토대로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결단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여론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기가 참 어렵다.

<정범진·제주대 교수·에너지공학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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