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승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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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보면 옛 성인들의 싸우지 말라는 가르침이 떠오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훌륭한 선비는 싸우지 아니하고 그렇지 못한 선비는 싸우기를 좋아한다(上士無爭 下士好爭)’고 말하였다.

손자병법 역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쳤다. 그럼에도 싸우기를 좋아하여 낭패를 본 기업과 싸우지 않고 전쟁을 피한 기업의 사례가 있다. 녹즙기 시장과 파스퇴르 우유가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맥도널드와 롯데칠성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녹즙기 시장 규모는 1992년 20억원에서 1993년엔 80억원으로 급격히 커졌다. 이리하여 1991년에 녹즙기 제조업체는 단 2개에 불과했으나 1994년에는 60여 개 회사로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1994년 7월 어느 녹즙기 회사가 법원에 경쟁사의 제품에서 쇳가루가 나온다고 고발장을 제출하였다. 이는 즉각 ‘쇳가루 검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쇳가루 검출 논쟁은 녹즙기 시장을 이전의 20~30% 규모로 급속히 위축시키고 말았다. 결국 60여 개 녹즙기 회사들이 문을 닫고 말았다.

파스퇴르 우유는 1995년 10월부터 몇 차례에 걸쳐 주요 일간지에 ‘파스퇴르 우유는 고름우유를 절대 팔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그러자 한국유가공협회가 이에 반발해 ‘파스퇴르 우유는 고름우유임이 밝혀졌습니다’라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몇 차례 거듭된 ‘고름우유 논쟁’은 우유시장에 찬물을 끼얹어 우유에 대한 수요를 이전의 10~15%로 떨어뜨렸고 급기야 파스퇴르 우유는 부도를 맞고 말았다.

1980년대 말 미국 햄버거시장의 2위 기업인 버거킹이 1위 기업인 맥도널드의 ‘빅맥 햄버거’를 겨냥, ‘쿼터파운드 햄버거’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버거킹은 쇠고기의 무게가 4분의 1파운드나 되는 제품을 만들어, 두 회사 햄버거를 저울로 비교하는 광고까지 등장시켰다.

‘우리보다 쇠고기도 적으면서 무슨 빅맥이냐?’는 식이었다. 이때 주위에선 맥도널드가 더 큰 제품을 내놓으며 대응할 것으로 보았지만 맥도널드는 ‘미국 국민이 하루 평균 먹는 빅맥의 양은 얼마’라는 동문서답식의 대응을 했다. 진흙탕 싸움을 피하면서 ‘맥도널드는 버거킹과는 차원이 다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는 데 주력한 것이다. 버거킹과 전면전을 펼치지 아니한 결과 맥도널드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매일유업은 1993년 6월 초 TV와 신문 등을 통해 ‘섭씨 100도의 고온에서 살균하면 비타민C가 파괴되지만, 저온 처리하는 썬업100은 비타민C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매일유업은 경쟁회사들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썬업이 화젯거리가 되어 자연스럽게 널리 알려지기를 은근히 바랐다. 실제로 매일유업은 ‘과일을 삶아 드실 겁니까?’라는 공격적인 광고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델몬트의 롯데칠성과 썬키스트의 해태음료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결과 썬업은 제품 자체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하였지만, 스캔들을 통한 대대적인 접전을 벌이는 데는 실패했다. 그동안의 치열한 주스 경쟁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롯데칠성과 해태음료는 이미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몸은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뻣뻣해지고 강해진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병법서 삼략(三略)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柔能制剛)’고 말한다. 군대도 강하게만 쓰면 적에게 패하게 마련이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기업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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