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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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에 관하여 누구나 말하듯이 “나의 인생은 성공”이라든가 “나의 인생은 실패”라든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참으로 답답한 가운데 어떤 속이 확 뚫리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내 인생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데에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한 가닥이 있다면 다음이다.’개자식’ 이야기다.

누군가 매우 고매한 어떤 분이 언젠가 무슨 일 때문에 날더러 ‘개자식’이라고 욕한 적이 있었다. 우선 그분의 인품으로 보아 할 만한 말이 아니어서 크게 놀란 중에 그분은 한술 더 떠 여러 사람을 붙잡고 내가 개의 몸에서 나오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노라고 내내 떠들어대며 욕을 욕을 하는 거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민망하고 서러울 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요 모든 것이 내 부덕의 결과로서 내가 나서서 변명하거나 마주 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야말로 스스로 가슴만 치며 ‘내 탓이요’를 되풀이할 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개자식이라면 천한 짐승 같은 백성의 자식이라는 뜻이겠는데 그 백성이 만약 요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추켜세우는 ‘민중’이라면 어찌 되는가!) 이런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만약 참으로 ‘민중’이라면, 만약 참으로 그 ‘민중’이 성경에 나오는 이른바 저주받은 자들, ‘네페쉬하야’라면, 그래서 예수가 하늘나라에 가는 가장 큰 적임자라고 추켜세운 바로 그 밑바닥 민중을 뜻한다면, 내가 참으로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셈이었다.

나는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용기와 자부심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변에 퍼트리기 시작했었다. “나는 본디 말이 서투른 아이였다. 내가 엄마를 부를 때는 항시 ‘엄 엄’했다. 그것이 마치 영감의 ‘험 험’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애기영감이라고 불렸다. 애기답지 않고 다 늙어버린 괴물 같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이른바 ‘모성 결핍의 사이코 파티페이스(정신장애형 유연성 결핍증)’의 일종으로 인식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나는 어릴 때 엄마의 젖을 제대로 못 먹어 스킨십이 부족하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바로 그 사랑의 테크닉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족 때문에 나는 늘 스스로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나마 그 어렵고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을 어떻게든 그럭저럭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통과할 수가 있었으니 ‘개자식’이란 나의 악명이 도리어 나의 유일한 인생처방이 된 셈이다.”

그렇다.

나는 참 모질도록 긴긴 세월을 고통과 수난을 견디며 살아왔다. 이른바 ‘비극적 명성’으로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나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은 행여라도 그 헛된 명성, 그 사실은 동정심이나 봐줘서 주는 헛점수에 그만 깜박 속아 스스로 무슨 큰 인격자나 되는 듯이 착각하게 되는 가능성이 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나 자신이 언제나 결핍이 심한 사랑 밖에서 살아온, 그 일종의 ‘개자식’이라는 자각이 있었기에 그나마 오늘의 나에까지 이르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인생이란 때론 ‘새옹지마’다. ‘개자식’이라는 악명이 있었기에 내가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랬었기에 그 숱한 날 나의 그 수많은 적들, 그 수많은 폄훼자들의 날카로운 배암 혓바닥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니 이제와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하매 인생에 관한 가끔의 생각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기인 긴 나그네 길에서 단지 몇 번밖에 참으로 살지 못한다. 그 참다운 기회가 ‘개자식’의 경우와 같은 그런 교훈과 연속될 때에 인생은 참으로 값어치 있는 것이 된다’고.

<김지하 시인·동국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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