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일(烏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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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까마귀하면 흉조로 알려져 있다. 생김새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까만 것이 음흉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울음소리마저 “까아악, 까르르”하는 게 왠지 음침하다.

이 때문에 까마귀가 나타나거나 까마귀 소리라도 들리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까마귀의 습성을 보면 우리는 크게 본받아야 한다.

명나라 때 박물학자(博物學者)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 따르면 “까마귀는 부화한 후 어미가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주며 정성을 다해 새끼를 기른다. 새끼는 자라서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늙어 힘에 부친 어미에게 60일 동안 먹이를 갖다 바치며 먹여 살린다.”고 했다.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하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유래다.

▲우리 고대문헌에는 까마귀가 예언능력이 있다고 묘사돼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扁)에는 신라시대 21대 소지왕에 대한 설화가 나온다.

왕은 경주 남산 기슭의 천천정(天泉亭)으로 행차하였을 때다.

까마귀가 날아와 봉투 하나를 떨어뜨리곤 사라졌다. 겉봉에는 이걸 뜯어보면 2명이 죽고, 안보면 1명이 죽는다고 씌어 있었다. 이때 나라 길일(吉日)을 예언하는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평민을 말하고, 한 사람은 임금을 뜻한다”며 봉투를 열 것을 청하였다. 봉투에는 ‘사금갑(射琴匣)’이라 씌어 있었다. 거문고가 들어있는 상자를 활로 쏘라는 것이다. 왕은 왕비의 침실에 있는 거문고 상자를 쏘니 그 안에서 왕비와 한 신하가 정을 통하다 나왔다.

왕은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까지 밝혀내고 이 둘을 처형했다는 줄거리다.

이 날이 바로 정월대보름이었다.

▲왕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까마귀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해서 매년 이날을 까마귀 제삿날인 오기일(烏忌日)로 정했다.

그리고 잣. 대추, 밤 등 귀한 재료를 넣은 약밥인 검은 밥을 지어 제물로 바치도록 했다.

하지만 서민들은 이 같은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쌀과 콩 등의 다섯 가지 곡식을 넣은 오곡밥으로 대신했다. 정월대보름날에 오곡밥을 지어 먹게 된 유래다.

조상들은 이날 오곡밥과 함께 귀밝이술인 이명주(耳明酒)를 마시고 묵은 나물도 먹고 땅콩. 호두 등 부럼도 까먹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예로부터 오곡밥과 묵은 나물, 부럼은 오늘날처럼 웰빙 건강식이었던 것이다.

오늘(9일)은 정월대보름, 까마귀 제삿날이다.

오곡밥을 지어 먹으며 반포지효와 같은 가슴 따뜻한 효(孝)의 의미를 되새겨 봄이 어떨까. <김범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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