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에 매료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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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찰의 음주단속에 걸린 어느 국회의원이 쓰디쓴 주위의 지탄을 맛보기는커녕 오히려 그로 인해 더할 수 없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지체 놓은 분이 면허정지 100일을 당했는 데도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연일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니 말이다.

그는 음주운전 사실이 보도되자 곧바로 “음주운전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반성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칭찬을 받는 ‘전화위복’의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구차한 변명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에 굶주려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인식돼 오고 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은 오랫동안 거짓말에 환멸을 느꺼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때 서울을 사수하겠노라고 해 놓고 국민을 남겨 두고 몰래 도망가며 한강 다리까지 폭파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정 복귀 약속 파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정치자금 수수 등의 거짓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정치에 대한 불신,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갖게 했던 것이다.

1년여 전 개봉된 영화 ‘공공의 적’의 제작 및 배급사가 전국의 네티즌 44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최고의 양심불량 인사’로 국회의원을 꼽았다 한다. 불명예스럽게도 2.3위에 해당하는 경제인(9.9%), 원조교제범(9.8%)에 비해 갑절에 가까운 18.2%의 수치로 1위를 차지해 당시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어떠했는지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일견 거짓말이 오히려 좋은 경우도 없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애국적인 거짓말도 있고 아내가 차린 음식의 맛이 별로였지만 “참 맛있게 먹었어”라는 애처가형 거짓말도 있다. 또 어린이에게 주사를 놓는 간호사가 “까무라칠 정도로 아파.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라기보다는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프단다”라는 공포심 제거용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때때로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경우에 쓸 수 있는 선의의 거짓말이라 하겠다.

우리 교육은 지금도 학생들에게 조지 워싱턴이 자기 잘못을 고백한 것을 예로 들면서 거짓말하지 않는 솔직성을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찌된 일인지 여기저기서 번드르르한 거짓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전세값 안정시키겠다” “보육시설 늘리겠다” “정경유착을 없애겠다”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럴싸한 말들….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사회만 하더라도 도민을 대표하는 전.현직 지사들과 검찰 간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놓고 ‘했느니’ ‘안 했느니’하는 법정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돼 도민들의 심사를 어지럽게 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 어느 한쪽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틀림이 있음직한 데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이 아무리 그럴싸하게 말한들 그 말에 힘이 실릴 리 없다. 물건을 팔기 위해 상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연구하며 고객을 설득하려 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거짓으로 상대를 유혹할 때는 화려한 말을 찾곤 한다. 하지만 꾸며낸 말은 생각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음주운전 사실을 떳떳하게 밝힌 어느 의원의 경우처럼 일단은 발뺌을 함직도 한 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 얼마나 인간적인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구성원간 솔직함이 전제돼야만 신뢰감도 더욱 충만할 것이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않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은’ 솔직담백한 자세야말로 이 각박한 현실을 슬기롭게 헤쳐갈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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