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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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夏)은 ‘물결’이다. 우선 초여름이면 보리밭 물결이 곱다. 얼마나 고왔으면 어느 시인이 촉촉이 비에 젖은 보리밭 이파리들을 ‘삼단 같은 머리’라고 했을까. 맥랑(麥浪)도 옛 시인들이 즐겨 쓰던 고요한 보리 물결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삼단 같은 머리’도, 맥랑도 점점 줄어들어 아쉬움만 남는다.

섬을 둘러싼 푸른 바다의 물결도 곱다. 사시사철 어느 때인들 곱지 않으랴만, 한여름 눈이 부시도록 짙푸르고 시원한 제주의 잔잔한 여름 바다 물결은 별나게 곱다.

그 별나게 고운 물결과 어우러진 여름 해수욕장 백사장에도 물결은 일렁인다. 이른바 인파(人波)라고 하는 사람의 물결이다. 사람의 물결은 제주의 들녘에도 있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산과 들에는 고사리 인파가 숨바꼭질을 한다. 이때 쯤 들길에 흐드러진 찔레꽃 물결 또한 아름답다.

요즘에는 관광인파라는 것도 있어 제주도내 명승.사적지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넘친다.

고향 제주를 떠나 사는 사람들은 아마 삼단 같은 머리 맥랑이며, 여름 바다의 물결이며, 고사리와 찔레꽃의 추억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릴적 한여름 ‘물결’의 향수(鄕愁)로 잠못 이룬 밤도 있을 터이다.

북한에도 제주사람들은 있을 것이요, 그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더욱 애틋할 것이다. 어디 제주사람들뿐이겠는가. 북한에 고향을 둔 채 실향민으로 제주에 정착한 이북5도민들도 이곳의 보리 물결이며 바다 물결, 찔레꽃이며 고사리를 보면 고향의 그것들이 추억될 것이다. 고향을 그리면 그릴수록 부모 형제가 더 그리운 것은 북한에 있는 제주사람이나, 제주에 사는 북한 실향민 모두 똑같을 줄 안다.

오는 7월이면 물결의 고장 제주에서 남.북한 통일민족평화체육축전이 열린다고 한다. 또 하나의 물결이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물결이 더욱 넓디넓은, 그야말로 파만경(波萬頃)으로 밀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민족체전 기간 북한에 있는 제주 실향민, 제주에 있는 북한 실향민들 이산가족들이 너나없이 이곳 물결의 본고장에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수가 너무 많으면 평화체전 기간 두 차례 쯤으로 나눠서 상봉을 해도 반갑기만 할 것이다.

이 문제는 남.북 민간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양쪽 정부 차원에서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것이 합의된다면 평화체전이야말로 파만경 큰 물결을 이룰 것이다. 이러한 바람은 한낱 꿈일까. 올해 여름은 참 좋은 여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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