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리포트 - 벼랑끝에 몰린 제주의 중산간 초원
제주리포트 - 벼랑끝에 몰린 제주의 중산간 초원
  • 김승종
  • 승인 200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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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파괴 급속 진행중
무차별 초지 잠식 이뤄져…제주 축산 도태 위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시에서 서부관광도로와 산록도로를 따라 서귀포시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탁 트인 한라산 중산간의 광활한 초원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드넓은 초원 위로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고수목마(古藪牧馬)의 목가적 풍경도 정겨웠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축산업 사양화와 관광 개발의 붐에 밀려 제주의 대규모 중산간 초지들이 골프장과 관광지구, 농경지 등으로 변모하면서 이런 풍광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과 맞물려 앞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각종 개발사업이 중산간 초지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돼 머지않아 중산간 푸른 초원은 간 곳 없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 초지 조성 - 66년부터…총 2만7268ha

1966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제주의 초지는 지난해까지 총 조성면적이 2만7268㏊에 달한다.

초지 조성 초기인 1966년부터 1979년까지 조성면적은 1만8430㏊로, 전체 조성면적의 68%가 이 기간에 조성됐다. 도내에 대규모 목장들이 조성된 것도 이 시기다.

초지 조성사업은 1980년대(1980~1989년)에 꾸준히 이어져 이 기간에도 7819㏊의 초지가 추가로 조성됐다.

1970년대 이전, 1년 평균 초지 조성면적은 1316.4㏊, 1980년대는 781.9㏊로 당시만 해도 초지 조성사업이 매우 활발히 이뤄졌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관광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초지 조성사업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져 1990년대(1990~1999년)의 초지 조성면적은 902㏊로, 1년 평균 조성면적이 90.2㏊에 그쳤다.

더구나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 동안 총 조성면적은 117㏊로, 1년 평균 조성면적은 39㏊에 불과하다.

▲초지 전용 현황 및 실태 - 전용 초지 32% 골프장 둔갑

1966년 이후 지난해까지 조성된 초지 면적 중 현재 초지로 관리되고 있는 면적은 1만9207㏊다.
이 기간 8061㏊의 초지가 사라졌다.

1976년 농림부의 불합리한 초지 정비지침에 따라 도내 초지 중 3163㏊가 초지에서 제외됐고 지금까지 2325㏊의 초지는 산림으로 기능이 환원됐다.

순수하게 개발사업 등에 의해 다른 용도로 전용된 초지는 2547㏊.

초지 전용은 1980년대 들어 법령상에 등장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만 현황 파악이 가능한데 1980년대의 초지 전용면적은 총 38㏊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1990년대에 1532㏊,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사이에 977㏊가 전용됐다.

초지 전용면적 실태를 보면 골프장 821.9㏊, 농.축.임업시설 558㏊, 농경지 527㏊, 교육시설 및 도로 등 공용 및 공공시설 307㏊, 관광시설 등 기타 시설 1155㏊다.

특히 골프장은 현재 13곳이 914.1㏊의 초지전용허가를 신청 중이거나 협의 중이어서 이 면적 모두 허가가 날 경우 골프장 건설에 따른 초지 전용면적은 앞으로 2~3년내에 갑절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초지 관리의 문제점 - 전용·행위제한 규제 미약

도내 중산간 초지가 대규모로 잠식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말 이후 초지 전용 및 행위제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무차별적인 전용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축산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초지전용허가권이 시장.군수로 이관되면서 지자체들이 관광 개발과 골프장 유치, 지역 주민들의 민원 해소 차원에서 초지전용허가를 쉽게 내주고 있는 점도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행 초지법은 조성시기가 30년 이상 지난 초지의 경우 전용허가를 받지 않고 신고만으로 전용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지역의 경우 1966년부터 1979년까지 조성된 초지가 도내 전체 초지 조성면적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10년 내에 상당 면적의 초지 잠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주도는 이런 이유로 2001년 30년 이상 경과된 초지의 신고조항을 삭제하고 초지전용허가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의 초지법 개정안을 농림부에 건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축산 전문가들은 또 골프장이나 관광시설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 초지가 최적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개발사업자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즉, 초지의 경우 토지가 평평하게 정비돼 있는 데다 중산간 지역의 광범위한 면적을 손쉽게 매입할 수 있고 대체조성비가 임야나 농지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다.

사실 대체조성비는 ㏊당 농지가 1억300만원, 임야는 1527만원인 반면 초지는 757만원에 불과하다.

아울러 도내 가축두수의 감소에 따라 유휴 초지가 발생하면서 초지가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는데 농지로 임대할 경우 임대수입이 만만치 않아 토지주들이 초지 관리를 기피하고 있는 점도 초지 잠식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단 및 대책 - 축산·오염·생태계 정책 시급

도내 대규모 초지 잠식상황과 관련, 양치복 전국한우협회 제주지회장은 “초지가 앞으로 계속 잠식될 경우 제주의 축산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전용허가 조건을 강화하고 목장 용지와 초지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양 회장은 “전국의 한우송아지 생산기지로 제주도가 선정된 것은 도내 초지가 전국 초지 면적의 48%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우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초지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라해문 환경국장은 “초지가 골프장이나 관광시설지구, 대규모 농경지 등으로 전용될 경우 지하수 오염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 국장은 특히 “초지가 임야와 임야 사이의 생태계 통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데 반해 초지전용허가는 생태계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단순히 초지 기능만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 변화 등 향후 많은 문제점들이 도출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우범 제주도 축정과장은 “독일 등 외국에서는 초지를 축산 목적뿐만 아니라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다루고 초지관리비도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다”며 “도내 초지전용문제도 청정 제주의 환경 및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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