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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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르거나 거꾸로(逆)라 해서 나무랄 일만은 아닌 성 싶다. 역(逆)이 반대로 진리에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역설(逆說), 즉 패러독스(paradox)의 경우가 그렇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은 참으로 지독한 역설이다. ‘지는 것’은 분명 지는 것이요, ‘이기는 것’은 분명 이기는 것이다. 어째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인가.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역설도 있다. 바빠 죽겠는데 돌아서 가란다.

이상한 것은 이러한 자가당착에도 이의(異意)를 제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도리어 거의가 긍정하는 태도다. 아마 역설 속에는 순리나 진리 비슷한 게 담겨 있는 모양이다.

4.24 재.보선에서 국회에 진출한 개혁국민당 유시민 의원이 1980년대 말 ‘거꾸로 읽는 세계사’란 책을 쓴 적이 있다. 세계사를 거꾸로 읽게 하는 책이라면 ‘역독(逆讀) 세계사’인 셈인데 좀 파라독스적인 책 제목이다.

그는 이 책에서 드레퓌스사건, 피의 일요일, 사라예보사건, 10월혁명, 대공황, 대장정, 아돌프 히틀러, 거부하는 팔레스타인, 미완의 혁명 4.19, 말콤 X 등등 세계사 속의 13가지 사건들을 자신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유 의원은 당시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학교 교과서나 매스컴이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른 시각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좋은 나라 소련은 나쁜 나라,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평화애호체제이고, 사회주의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침략세력이라는 식의 맹목적 반공주의와 흑백논리 아래서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이상, 20세기 후반의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과 현상에 대해 결코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거두절미로 서문(序文)의 본 뜻이 손상됐는지 모르지만 유 의원이 지금도 그 때의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궁금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 유시민 의원이 이번에는 붓으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국회의원 선서 때의 복장을 역착용(逆着用) 했다가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사실 그제 있은 그의 의원선서는 그 전날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선서 직전 면바지에 넥타이도 없는 티셔츠, 캐주얼 상의 등 그의 복장이 문제가 되어 의원선서는 하루 연기되었다. 그 때 의원들 간에는 국회의원의 품위 실추, 국민과 국회에 대한 모독과 결례라는 등 고성까지 오갔다고 한다.

정장으로 의원선서를 하는 오랜 국회 전통과 관례를 캐주얼 차림이라는 역사고(逆思考)로 깨려던 유 의원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세계사를 거꾸로 읽든, 캐주얼 차림의 의원선서를 하든, 비록 역설이라 해도 ‘지는 것이 이기는 것’과 같은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내용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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