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미국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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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년 전, 조선은 쇄국의 문호가 열리고 외국과 통상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이웃나라인 청나라는 외세에 의해 근대화가 이뤄지고 있었고, 일본 역시 명치유신을 통해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선의 지성들에게는 당시 주변 열강과의 관계를 잘 조정하고 세계 조류인 ‘근대화’의 대열에 합류하는 길이 가장 큰 현안이었다.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한 조선의 지성들로선 그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개화기 초기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성들은 미국을 어떻게 보았을까.
조선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는 미국의 선거제도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은 ‘선거라는 제도로 덕망 높고 재간 풍부한 사람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로, 마치 미국의 선거제도를 임금을 뽑기 위한 과거제도처럼 인식했다.

그런 선진적인 선거제도 덕분에 미국은 날로 부강해지고 미국의 번성을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이 신문의 핵심적인 미국관이었다.

서재필이 만든 ‘독립신문’은 어떤가. 미국을 국제사회에서 약자를 보호해주는 ‘수호천사’로 서술했다. “강토를 넓힐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무례하게 압제를 받으면서 자기 나라의 군사의 목숨을 내놓고라도 약자를 구제해 주는”, 세계 정의를 구현하는 평화의 화신으로 표현했다.

이런 대미 인식은 ‘조선책략’을 통해 ‘양무개혁(洋務開革)’을 주도한 청나라 지도부의 호의적인 대미관을 그대로 따른 데 기인한다.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가 존멸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던 조선의 지성들에겐 미국은 근대국가의 전형이었다. 조선의 지성들에겐 영국의 식민지에서 이른 시일내에 제2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였다. 또한 미국은 선거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룬, 닮고 싶은 나라였던 것이다.

이 당시 미국은 다른 열강에 비해 영토에 대한 야심을 비교적 드러내지 않았던 터라, 호시탐탐 조선을 경제 수탈과 이권 침탈의 대상으로 삼았던 다른 열강과는 달리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던 조선 지성들의 인식은 미국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조선인 최초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선 유길준은 “미국은 우리의 통상 상대로 친할 뿐, 우리의 위급을 구해주는 우방으로 믿을 바는 못된다”고 ‘중립론’에 썼다.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 체결에 관여한 조선의 대신 김윤식은 “미국 사람은 말만 떠벌리지, 행동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 윤치호도 인종 차별, 마약과 범죄가 만연한 나라로, ‘기독교 국가’로 포장된 미국의 이면을 꿰뚫고 있었다.

1883년 초대 주한 미국공사 푸트는 미국 국무부에 올린 보고서에서 조선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조선은 정체되고 빈곤한 나라로 수출 가능한 산물이 별로 없는, 단물이 빠진 껌에 불과하다”고.

그 후 미국은 조선 공사의 직위를 강등했고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며 자국의 이익 챙기기에 앞장섰다.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지어주며 착한 조선 백성들의 환심을 산 이들도 결국 다른 열강들처럼 이권 챙기기에 급급했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어떤가. 미국의 패권주의는 날로 번성하고 있고, 한반도 주변 열강을 둘러싼 역학관계 역시 변하지 않았다.

한 세기 전 실패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100년 후 우리 후손들이 현재 한.미관계에 대한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21세기 새로운 한.미관계의 재설정을 위해 미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체계를 치열하고 준엄하게, 합리적으로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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