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03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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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온 나라를 뒤덮었던 ‘대~한민국’ 함성과 열정은 어디로 간 것일까? ‘충격과 공포’로 이름지어진 대(對) 이라크 전쟁이 끝내 발발하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새로운 기운이 우리의 주변을 감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질병의 공포가 무슨 유령처럼 올 봄 내내 지구를 떠돌고 있다. 무슨 만화경을 보는 듯한 이 현실이란 과연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에 우리 모두가 짐짓 대화를 멀리했거나, 자기 안의 타자를 다스릴지 모르는 소인배(小人輩)와 다름없는 인간의 근시안적 욕망이 기생하고 있다.

대화의 부족이 어디 사람과 사람 간에 그치는 문제일까. 민족을 단위로 그것과 같거나 혹은 작은 크기의 국가를 만들어 경영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현세를 살고 있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 삶의 모습일진대,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국가들 간에 대화와 소통의 방식을 창안해내지 못하고 두 차례의 세계전쟁으로 치닫고 말았다는 데 있다. 엄밀히 말해 국력의 강약을 불문하고 참여할 수 있는 범세계적 의사소통의 제도라곤 유엔의 각종 위원회 내지 산하 기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조직은 사후약방문 격이다. 오죽하면 비정부기구(NGO) 같은 단체가 출현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인류는 만국공법(萬國公法)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국가 간의 이익 충돌을 조정하는 수준에 머물지언정 스스로의 국격(國格)을 가져야 한다. 그곳으로부터 다시 지상의 길을 걷는 인간의 모습만이 우리들의 몫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동선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사스 공포’ 또한 우리들 자신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들이 과도한 항생제 복용으로 말미암아 저항력을 잃은 나약한 생물 일종으로 되었다고 진단하는 의학자들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화 생물학의 관점에서 제출된 대로 병균은 원래 더 큰 병을 예방하는 방향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에 기대어 한편으론 스스로를 위로를 해보긴 하지만, 원래 지구적 환경에서 적자생존해온 인류사를 염두에 둘 때 원인과 치유법을 모른 채 병마에 속수무책인 작금의 상황은 아무래도 불안 그 자체다. 좁게 보면 발전주의에 사로잡힌 중국의 국가 이성이 그 주범이요, 넓게 보면 20세기형(型) 인류 문명의 도저한 후유증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국가.민족 간 비생산적 경쟁을 지금이라도 당장 멈추고, 인류에게 내려진 지구경영이 지상명령임을 자각해야 한다. 지상의 한 관리자로서 우리는 지구환경을 잘 보전하고 태양 아래 편재한 혜택을 고루 나누어 누릴 줄 알아야겠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던가.

‘북한 핵 문제’와 ‘사스 공포’가 자칫 하면 동아시아의 활로를 막을 수도 있다는 원견을 가지고 미국.중국과 더욱 긴밀히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라크 파병 결정보다 더 명예로울 ‘사스 공포’ 지원에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특히 우리 제주도민은 병마가 걷히면 철새처럼 떠나갈 여행객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중국의 어려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비자 지역은 관광산업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며, 질병에 대한 공동의 노력장(場)에도 해당될 터이다.

한동안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이 유행하곤 했다. 바로 삶의 일상성이 긴박했던 현대 문명에 대한 20세기적 표상에 다름 아니었는데,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그런 자조마저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봄의 향연으로부터 추방당했다는 얘기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내년부터라도 다시 봄으로 찾아갈 수 있을까? 각자성불(各自成佛)하는 심정으로 인간이 걸어야 할 지상의 길로 하루빨리 되돌아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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