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 한·미 정상회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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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후 반세기가 넘는 동안 여러 번의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이번 노무현.부시 회담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심각하고도 미묘해진 ‘북핵’ 문제가 최대 현안이라는 점, 전에 없던 촛불행진 후의 한.미 관계 및 주한미군 문제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 등을 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미국의 ‘북핵’ 정책이 오락가락함으로써 사람들의 판단을 어렵게 하는 한편 미국은 이미 ‘북핵’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관측들이 나오기도 하고, 또 ‘북핵’은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이 더 불편해 하며 따라서 미국은 그 해결을 위해 기를 쓰고 중국을 앞장세운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 20세기 동안 인류사회는 두 차례의 처참한 세계대전을 비롯해 많은 국지전을 겪었다. 그런데도 더 큰 불행은 대량살상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애는 길은, 자위책으로 몇 개 가지려는 나라들이 못 가지게 하는 것보다 대량으로 가진 나라부터 없애 가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초대강국이 같은 무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작은 나라를 거침없이 침공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약육강식 하는 제국주의 세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대량살상 핵무기는 어느 나라는 가져도 되고 어느 나라는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가지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북핵’ 역시 당연히 없어야 하지만, 다만 그것은 일종의 체제보장용이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때문에 ‘북핵’이 없게 하는 지름길은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들이 북의 체제를 인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지난해의 촛불행진은 해방 후 한.미 관계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촛불행진은 반미운동이라기보다 미국과의 ‘특수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탈미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광주항쟁 이후 나타난 반미운동은 소수 의식 있는 젊은층에 한정된 운동이었던 데 반해 촛불행진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한.미 사이의 ‘특수관계’를 청산하고 정상관계를 수립하려는 국민적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른바 주변 4강이란 것이 있다.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려는 역사의식에서 보면, 그리고 남쪽만의 처지나 북쪽만의 처지를 떠나 한반도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역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변 4강 중 하나일 뿐이어야 한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미국과의 관계도 ‘혈맹의 우방’이니 하는 ‘특수관계’를 청산하고 주변 4강관계 중 하나로 바꿔야 한다.

다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전체 동아시아인의 자존심 문제와 연관된다. 태평양 건너 있는 미국의 군대가 와 있어야만 동아시아가 평화롭다면, 별 짓 다해도 미군이 한반도나 일본에 주둔해야만 동아시아가 평화로워진다면, 21세기에도 미군 없이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보장될 수 없다면, 그것은 분명 동아시아인의 자존심과 관계되는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세계사는 민족국가의 벽을 낮추면서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쪽으로 가고 있다. 공동화폐를 쓰게 된 유럽공동체는 말할 것 없고 이웃 동남아공동체도 날로 결속되어 가고 있다. 수천년 같은 문화권을 이뤄온 ‘동양 3국’은 아직 지역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데다 미국과 같은 다른 문화권 군대가 주둔해야만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그런 수준이라면, 분명 ‘동양 3국’인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자존심이 회복될 때 비로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없이도 평화로운 동아시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북핵’ 문제를 한.미 공조로 풀되 어렵게 커 가는 남북공조를 해치지 않아야 하고, 한.미 관계도 촛불행진이 있게 된 시대적 변화에 맞게 바꿔야 하며, 주한미군 문제도 이젠 동아시아인의 자존심과 연계해서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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