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인용하며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이다.
지난달 26일 구속된 이광재 의원은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친노 진영은 좌불안석이다.
여기다 박연차 회장의 500만달러가 노 전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사위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노 전대통령에게도 4월은 잔인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수사의 확대 전망 속에 여권도 어수선하다.
이처럼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냉기 속에 정치권은 떨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 또한 참담하다.
▲왜 4월은 잔인할까.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우리가 4월을 맞아 흔히 들을 수 있는 고정 멘트처럼 결코 가벼운 시가 아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전편 433행으로 1부 ‘죽은 자의 매장’에 나오는 인용 싯구절 등 일부가 대중적으로 회자되지만 시 자체는 일반독자가 쉽게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난해하다.
1922년 발표된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후 유럽의 정신적 혼미와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검사장의 예측은 정확했다.
이 시를 통해 엘리엇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부재, 정신적인 메마름, 재생이 거부된 상황에 대한 진단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이같은 인식은 마치 오늘의 한국정치를 보는 듯하고, 그 비리의 중심에 선 정치권 인사들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쇠고랑을 찰 것이다.
또 이들 정치권 인사들은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조롱 속에 매달려 아이들에게 조차 구경거리가 된 로마신화에 나오는 쿠마의 무녀 시빌레와 닮았다.
황무지로 상징되는 무녀는 아이들이 “뭘 원하니?”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죽고 싶어”라고.
<김홍철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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