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황무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4월이 밝았다.

대검찰청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인용하며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이다.

지난달 26일 구속된 이광재 의원은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친노 진영은 좌불안석이다.

여기다 박연차 회장의 500만달러가 노 전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사위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노 전대통령에게도 4월은 잔인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수사의 확대 전망 속에 여권도 어수선하다.

이처럼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냉기 속에 정치권은 떨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 또한 참담하다.

▲왜 4월은 잔인할까.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우리가 4월을 맞아 흔히 들을 수 있는 고정 멘트처럼 결코 가벼운 시가 아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전편 433행으로 1부 ‘죽은 자의 매장’에 나오는 인용 싯구절 등 일부가 대중적으로 회자되지만 시 자체는 일반독자가 쉽게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난해하다.

1922년 발표된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후 유럽의 정신적 혼미와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검사장의 예측은 정확했다.

이 시를 통해 엘리엇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부재, 정신적인 메마름, 재생이 거부된 상황에 대한 진단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이같은 인식은 마치 오늘의 한국정치를 보는 듯하고, 그 비리의 중심에 선 정치권 인사들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쇠고랑을 찰 것이다.

또 이들 정치권 인사들은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조롱 속에 매달려 아이들에게 조차 구경거리가 된 로마신화에 나오는 쿠마의 무녀 시빌레와 닮았다.

황무지로 상징되는 무녀는 아이들이 “뭘 원하니?”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죽고 싶어”라고.

<김홍철 편집부국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