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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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고향이 두 개였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성씨(姓氏)의 고향이다.
후자를 관향(貫鄕) 또는 본관(本貫)이라고 한다.

제삿날 신위(神位)를 밝히는 지방(紙榜)을 쓸 때는 반드시 본관을 적어놓는데 이처럼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령이 되었어도 본관이 존속하고 있었다.

옛날 선비들은 여행길이나 벼슬살이 가는 도중에 자신의 관향을 지나갈 때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초면에 인사를 나눌 때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대는 것이 아니라 관향을 대어 제주인(濟州人)이니 전주인(全州人)이니 경주인(慶州人)이니 했다.

▲일전에 미국에서 영주권을 갖고 살고 있는 동창이 귀국했을 때 토로했던 말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을 갖고 있는 아들 녀석이 함께 TV를 보다가 한국관련 내용이 나오자 “아버지의 나라가 나온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 나라가 당연히 아들의 나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문득 ‘관향’과 ‘본관’이란 말이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미국인이 된 아들 녀석이 너의 또 하나의 고향은 ‘한국’이라고 설명하며 그것의 의미를 이해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고 했다.

▲‘관향’은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 명예와 직결되는 정신적 지주였다.
이 관향의 시초에 대해 ‘수문쇄록’이라는 문헌에 보면 학자 김종직(金宗直)의 설이라며 이렇게 쓰고 있다.

신라 말 고려 초에는 오늘날 지방유지라 할 수 있는 토호(土豪)들이 백성을 다스리며 나라에 공물을 바쳤는데 이를 호장(戶長)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호장제는 일종의 소규모 봉건제도였다 할 수 있다.

족보에 보면 가문의 시조나 중시조에 호장벼슬이 많이 나오는데 바로 이 호장제도가 관향의 시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김(金)씨만 해도 전국에 관향이 45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웬만한 고을이면 이 고을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가 20~30개 안팎이 된다.
예를 들어 전라도 나주(羅州)의 경우 62개 성씨가 관향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이런 성씨의 고향인 관향도 최근 호적제도폐지문제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향수가 되고 있다. 성씨(姓氏)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판에 관향을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수구(守舊)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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