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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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발표된 청소년 유해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지역은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데 상당히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인 걸로 나타났다. 특히 제주시의 청소년 성장환경은 대도시 유흥지구보다 나쁘다고 한다.

술.담배 판매량, 청소년 범죄 건수, 청소년 대상 성범죄 건수, 휴흥업소 수 등을 바탕으로 유해환경지수를 평가해 본 결과, 전국 232개 기초단체 중 제주시가 6위, 북제주군 13위, 서귀포시 67위, 남제주군 126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흥.단란주점 비율에서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74개 시 단위 기초단체 중 단연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가 관광지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러한 결과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관광객들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제주도를 찾는다. 관광지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일탈이 허용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가상현실을 제공해 주는 가상공간(cyber space)이나 다름없다.

연인들과 신혼부부들은 거리낌 없이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정신적.육체적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은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상현실을 제공해 주는 제주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제주도가 관광지인 이상, 관광객들의 그러한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관광도 산업인 이상 그들에게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무릇 관광지라면 밤낮이 따로 없고, 없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곳이다. 그리고 제주도가 관광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제주도는 놀기 좋은 곳이라야 한다.

관광객에게 제주도는 그야말로 맘껏 즐길 수 있는 일탈의 장이요, 제주도에서 2박3일간의 여행은 꿈과 같은 가상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제주도민에게 이 지역은 365일을 살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이요, 하루하루의 생활은 한숨 섞인 실제현실이다.

그 점에서 제주의 청소년들은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의 접점에 서 있다. 한쪽에선 가상현실로 어서 오라 유혹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잡아당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관광객들은 제주도에 일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놀러오는 것이고, 돈을 벌러 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러 오는 것이다. 사실 제주도에 오는 관광객들은 몇 년을 벼르고 별러 어쩌다 한번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그들이 제주도에 와서 맘껏 놀고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청소년들은 관광객들의 과소비와 일탈행위를 보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와서 2, 3일 놀다가 제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360일을 열심히 일하는 실제현실의 모습은 결코 보지 못한다.

도민들이 관광객을 흉내낼 수 없고, 흉내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도민들이 골프를 치라고 골프장을 건설하고, 도민들이 즐기라고 유흥업소를 그렇게 많이 만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관광객들에게 제주도는 삶의 고통을 잊도록 가상현실을 제공해 주는 가상공간이지만, 도민들에게는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고통스런 삶의 현장이다.

따라서 관광객을 고객으로 하는 골프장, 카지노, 유흥업소 등에 도민들의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하면 제주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설상가상으로 제주도의 경우 이혼율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붕괴되는 가정은 우리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 내몰게 될 것이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괸당’이요, 선.후배라고 한다. 그렇다면 유해업소 앞을 서성거리는 청소년들은 바로 내 자식이고 조카들이 아닌가. 유흥업소측에서는 청소년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지 말이야 한다.

그리고 관계 당국에서도 제주도 특성을 감안해서 청소년 유해업소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단속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암울한 현실 앞에 청소년들에게 그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무력한 논자가 한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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