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러시아 극동지역을 가다 - "在러시아 교민이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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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는 구한말과 일제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가 정착했던 곳.
연해주의 한인 17만명이 스탈린 치하에서 6000여 ㎞ 떨어진 타쉬켄트, 알마아타 등지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가 1991년 옛 소련이 붕괴된 뒤 다시 연해주로 이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의 자국민 우월정책으로 애써 가꾼 땅 등을 헐값에 판 뒤, 1주일간 열차를 타고 부모와 조부모들이 처음 발붙였던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한국계 주민들은 ‘고려인’이란 뜻의 ‘까레이스키’라고 불린다.
연해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 수많은 선조들이 이주해 가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으로 민족사의 요람 가운데 하나이다. 한인 이주민들은 그곳에서 정착하기도 전에 소련 당국에 의해 산 설고 물 설은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라는 민족 차별적인 설움을 당했다.
연해주 인구 230만명 중 고려인이 4만명에 가까운 데 이 중 대다수가 지난 10년 사이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이주해 왔다.


강제 이주 전 고려인들의 최대 정착촌이던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카야의 신한촌을 찾았다. 지금은 ‘신한촌 기념비’만 세워져 있을 뿐 한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한촌은 해외독립운동의 요람이자 교육, 언론, 문화의 중심지로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50만 한민족의 근원지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1999년 8월 15일 한국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가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기념탑을 세웠다.
조성윤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이 지역의 한인들을 중심으로 선인들이 일궈놓은 땅을 되찾아 한인촌을 다시 건설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며 “재러 한인들은 같은 민족이며,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립투사의 후예들”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새로운 한인촌 건설은 이들만의 몫이 아니다”며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의 관심과 재정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로 향하는 우수리스크 미하일로프카 군 대로변에 들어선 고려인 우정마을 신축공사 현장.
정문 양쪽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 장승과 한글 안내판이 우리를 맞았다. 공사장 울타리 벽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연해주에 ‘코리아타운’을 세우려는 민간단체의 노력이 첫 결실을 맺은 현장이다. 2000년 9월 30일 이곳에서 거행된 고려인 우정마을(일명 코리아타운) 입주식이 그것이다.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가 주축이 돼 추진해온 이 사업은 2008년까지 1000가구의 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아래 1차로 40여 채를 완공, 집들이를 한 것이다. 시작은 작지만 끝은 원대한 계획이다.
협회는 이를 위해 택지 64만평과 농지 900만평을 연해주 주정부로부터 70년간 무상 임대받아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우정마을에 입주하는 고려인들에겐 26~28평 규모의 기와집과 자급자족에 필요한 400여 평의 텃밭이 제공된다.
또 고려인 자녀 교육을 위한 세종학교와 새마을센터도 함께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현재 기금 부족 등으로 공사가 더디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국민적 관심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 사업은 1930년대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한 연해주 출신 고려인들의 귀향을 돕자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이 연해주로 돌아오는 것은 광활하고 비옥한 농토가 있다는 것 외에 조국과 가깝고 경제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옛 러시아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짙어지면서 고려인이 다시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하바로프스크 시내의 재래시장에서 한인과 중국 조선족,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인 상인들은 대부분 여성들로 한데 모여 김치와 나물 반찬 등을 팔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버스로 약 2시간을 타고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발해 유적지를 찾았다.
오래도록 잊혀졌던 나라 ‘해동성국’ 발해의 유적지는 표지판 조차 없이 숲 속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
1960년 레닌그라드 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했지만 재정난 등으로 지속적인 발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발굴 당시 숲 속의 낮은 언덕을 중심으로 문자가 적힌 돌거북등, 기와, 불상, 화살, 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이곳에서 발견된 4개의 정사각형 주춧돌은 절터 또는 창고터로 추정되고 있다. 인근의 토성터에는 방어를 위해 파 놓은 ‘해자(垓子)’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극동주립대학 한국어과 송진아 교수는 “러시아는 이미 1950년대부터 발해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이며 연해주 유적 발굴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의 연구 실적은 미미하다”며 “얼마 남지 않은 발해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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