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때 제주목사 재임 제주목 정비 등 제주문화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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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대유(大裕), 호는 야계(冶溪), 본은 연안(延安)이다. 전주에서 이돈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현종 9년(1668년) 문과별시에서 전시을과(殿試乙科) 급제 후 주로 삼사(三司)에서 봉직하다 공주목사를 거쳐 숙종 20년(1694년) 5월부터 숙종 22년(1696년) 2월 체거(遞去)하기까지 2년여 간 제주목사로 지냈다. 벼슬은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그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동안 관덕정, 운주당, 우연당, 향고 등을 중창하였으며 우암 송시열을 귤림서원에 배향(配享)했다.
특히 탐라에 관한 문헌이 부족한 것을 느껴 ‘지영록’을 편찬하는 등 제주목을 정비하고 학문을 장려해 제주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저서 지영록은 1997년 제주문화원에서 번역본을 출간, 17세기 제주의 실상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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