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장보고호 한·중·일 탐험기-① 황해 중부 횡단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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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 선단의 한.중.일 무역로를 뗏목 ‘장보고호’를 타고 종단해온 동아지중해 역사탐험대가 40일 대장정을 마쳤다.
지난 3월 24일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를 출발한 탐험대는 산둥반도, 인천, 제주 대포를 거쳐 일본 고토(五島)열도 나루시마를 돌아 지난 5월 4일 제주 대포항으로 귀국했다.
40여 일 동안 한.중.일 3국 바닷길을 뗏목으로 탐사한 ‘장보고호 선장’ 윤명철 동국대 교수의 탐험기를 3회로 나눠 싣는다.【편집자주】


“황해는 海上王 정보고의 바다였다”

폭풍주의보가 발효됐다.

“물결의 높이는 먼 바다에서는 3~4m 정도이고….” 흔들리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이미 우리는 그 극성스러운 파도를 맞아 당번 한 명을 빼놓고는 모두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한마디 말도 없이 꼼짝도 않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뗏목은 직경 20㎝의 대나무 56개를 2층으로 엮은 길이가 12.5m, 앞폭 2.5m, 뒷폭 4.8m의 몸체에 돛이 앞뒤로 2개, 그리고 조그만 원두막 모양의 선실이 있었다. 장보고는 1200년 전 인물이다. 우리 민족사에서는 특이하게도 바다의 해상왕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으며, 최고의 국제적인 인물로서 삶과 죽음 또한 매우 극적인 인물이다. 해류, 조류, 바람, 그리고 지형에 따라 매우 복잡한 동아지중해의 물길을 정확히 알았던 그 휘하의 테크노크라트들은 바다에 그들의 나라를 세웠다.

지난 3월 26일 아침 마침내 뗏목은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의 먼 바다에서 폼나게 동진을 시작했다. 불과 250여 ㎞가 조금 넘는 황해 중부 횡단항로는 손쉬운 항해라고 여기면서. 하지만 남향하는 해류대가 예상보다 너무 빨리, 그리고 강하게 우릴 덮쳐왔다. 바람과 물결이 제각각 부딪히면서 신경질적으로 뗏목을 뒤흔들어댄다. 태풍을 여러 번 맞아 보았지만 이번은 왠지 다르리라는 예감이 엄습해왔다.

기대했던 황혼이 파도 속에서 실종된 채 시커먼 밤이 닥쳐오고, 간간이 보였던 별빛들도 날리는 파도가루에 덮여 자취를 감췄다. 뗏목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당혹감, 고통 속에서 그들의 울분과 공포, 담력과 희망, 그리고 처절한 죽음과 확실한 성공 등을 몰아치는 파도를 맞으면서 강제적으로 느껴가기 시작했다.

아침을 맞는다. 드러난 내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대한해협 도항, 황해 서안 종단 항해, 동중국해 사단항해 등등. 선실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빛을 쫓아 중병환자처럼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열어 젖힌 문짝의 돗자리에 해결 자욱이 선명하게 찍힌다. 무한면적의 망망대해, 초점이 먼 눈길과 무한한 마음길. 계급의 굴레, 신분의 속박을 용납할 수 없는 장보고의 심성은 이 바다의 드넓음에서 나왔겠지.

밤이 되면 파도는 유독 심해진다. 식량 담당인 홍선표가 지친 몸을 이끌고 밥을 짓고 찌개를 만들어 놓았지만 나는 이내 숟갈을 놓고 물러나 앉는다. 2평 남짓한 유한공간에 5명이 오그려 앉고 기댄 채 눕는다. 롤링과 피칭이 번갈아가면서 때리는 게 아니라 동시에 두들겨댄다.

진저리치도록 추운 또 하루의 밤이 지나갔다. 채 덜 익은 햇살에 얼은 몸을 녹여보려 문을 열다가 기겁해 주저앉는다. 찬바람 줄기가 볼따귀를 때린다.

‘퉁퉁’ 소리가 들린다. 칠도 안 한 육중한 중국의 나무배들이 나타났다. 컵라면과 집게, 조기들을 은밀하게 교환한다. 뗏목 위에 실려 있는 사탕수수대나 ‘엔지’ 같은 과실도 고대에는 일종의 교역품이었다. 이렇게 육지 사람들과 관리들이 모르게 바다의 여기저기서 밀무역을 했던 것이다.

드디어 한국의 바다에 들어섰다. 서해 연안을 타고 북상하는 해류와 또 조류대가 겹친 탓인지 물결은 바람을 밀며 뗏목을 북으로 밀어붙인다. 초조하게 시간은 흐르고, 북에는 북한이 있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경도상으로는 영락없이 연평도 선에 있다.

파도가 더욱 높아진다. 평균 4~5m 정도다. 갑자기 우두둑 소리가 어둠을 헤치며 들린다. 바람이 세서 돛대가 견디다 못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비상소리와 함께 본능적으로 뛰어가는 대원들. 한밤중에 실존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어둠과 랜턴 불빛, 찢어진 돛, 다급한 목소리들이 뗏목 위를 가득 채운다. 앞 돛을 간신히 내려 돛대를 원위치로 하고 아예 주돛마저 내린다.

또 하루가 태양과 함께 떠올랐다. 며칠째 강한 바람에 야금야금 찢겨가던 대장기의 남색단이 마침내 터져 나가면서 너덜너덜해졌다.

바다는 인간 욕구보다 자연 순리가 먼저
거친 파도·어둠과 사투…다시 태양 떠올라


해도를 보니 소청도 30마일 지점이다. 이젠 아무래도 항해를 끝내야 할 것 같았다. 1997년에는 동중국해를 지나 거의 1000여 ㎞를 항해해서 절해고도인 흑산도에 정확히, 그것도 밤 12시에 상륙시켰다. 그 기적을 재현하고 싶었는데, 이미 하늘은 인간의 바람보다 자연의 순리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덕적도를 향해 예인되는 뗏목 위로 아침이 내려앉는다. 이제 탐험의 1구간인 황해 중부 횡단항로(산둥반도에서 한국 중부 해안으로 들어오는 항로)는 끝이 났다. 황해는 아늑한 내해만은 아니고, 때로는 더 어려운 항해술과 조선술이 필요하며 인간의 의지가 요구되기도 하는 바다였다. 장보고 이전에도 그랬듯이 장보고는 황해를 그들의 바다로 만들었던 것이다.

윤명철 동아지중해 종단 뗏목 역사탐험대 대장·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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