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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은 넋이다. 그 비슷한 것에 백(魄)이란 것도 있다. 과거 동양에서는 ‘혼’과 ‘백’은 각각 인간의 생장을 돕는 양기(陽氣)와 음기(陰氣)로서 전자는 정신을 주관하고, 후자는 신체를 주관한다고 믿었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곧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지는 것을 이른다.

혼은 사람 개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민족 공동체에도 있다. 민족혼(民族魂)이 그것이다. 민족혼이 있으니 국민 공동체에는 국민혼(國民魂)이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나라에도 혼이 있는 것일까. 옛 불교에서는 역대 임금의 위폐를 모신 단(壇)을 ‘국혼단(國魂壇)’이라 했다. ‘짐이 곧 국가’였던 시절이니 임금의 혼이 나라의 혼일 수도 있다.

지금은 민주시대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듯이 국민이 대통령인 세상이다. 나라 주인이 임금에서 백성으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제는 국민혼이 국혼(國魂)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처한 이 시대에 개인이든, 국민 공동체든, 정부든, 건전한 혼을 갖고 있는가에 있다. 국가보훈처가 ‘호국.보훈의달’을 맞아 실시한 ‘전쟁 등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참여의식’ 조사 결과로는 회의적이다.

전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한 이 조사에서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본인 혹은 가족이 위기 극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응답자가 72.8%에 불과했다.

2000년 82.2%, 2002년 79.3%에 비해 훨씬 낮다. 국가위기 극복 동참 의사를 밝힌 국민이 해마다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혼’이 어디론가 빠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놀라운 일은 26.6%는 전쟁 같은 위기가 닥치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데 함께 할 뜻이 없음을 밝힌 점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과연 이게 그들만의 책임일까. 연일 정치인.사업가.고위 공직자들이 부정부패사건으로 검찰 나들이요, 자녀들의 병역기피요, 정파와 당권을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전국 도시들에는 붉은 머리띠에 두 주먹을 불끈 쥔 군상들이 넘친다.

신성하다는 교육계마저 두 쪽이 났다. 아래로는 학생이 선생을 경찰에 신고하고, 위로는 교사들이 교육부총리를 고발한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곳곳에서 국민혼이, 그리고 나라혼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들 혼은 돈을 향해, 권력을 향해, 일신만의 영달이나 안일을 향해, 또는 집단이기주의를 향해 빠지고 또 빠지는 모양이다. ‘혼’뿐이 아니라 ‘백’까지 빠지는 것 같다.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지면 나라에 남는 현상은 혼비백산이다.

2000년 동안 유랑한 이스라엘 민족은 혼이 살아 있었기에 훗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1년간의 호소로 나폴레옹에게 패한 프로이센에 혼을 불어넣어 나라를 일으켰다. 우리는 하다못해 넋들이 나라굿 푸닥거리라도 해야 제대로운 나라가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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