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장보고호 한중일 탐험기-③제주~일본 열도 간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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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꿈, 21세기에 다시 한 번

장보고호는 지난 4월 15일 완도에서 탐라로 향하였다. 밤새 노를 젓다가 연해에서 예인하여 남으로 돌아 17일 오전 대포항에 입항하였다. 장보고 선단들이 머물렀을 가능성이 큰 항구라는데, 1200년의 역사는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법화사에 머물면서 대원들은 출항 준비를 다시 했다. 현무암에 구멍을 뚫는 빗줄기에 몸을 적시며, 안개에 스며들고픈 유혹을 참느라 애쓰면서 1100고지를 넘기도 했다. 항해자들에게 이 섬은 환상의 섬, 생명의 땅이었을 것이다. ‘탐라’, ‘섭라’ 등등 옛 명칭들은 어쩌면 이어도 같은 개념을 지닌 말이 아닐까? ‘비바리’는 그곳에 사는 여신 같은 존재들이고.

19일 못내 아쉬운 듯 장보고호는 뭍사람들을 떠나 바다로 나갔다. 강한 비와 자욱한 안개를 끝내고 난 참이라 날도 개고 바람도 안정적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람이 북쪽에서 내리꽂힌다. 영등할미가 분노했는지 마치 한라산의 모든 숲바람이 통째로 몰려오는 것 같다. 남쪽으로 밀리던 뗏목은 마침내 정지했다. 고생을 무릅쓰고 앵커(닻)를 바다에 던졌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잘 나가는 듯하더니 파도가 높아진다. 왜 그럴까?

제주 떠나자마자 태풍 ‘구지라’ 영향

라디오 소리가 건조하게 들린다. 태풍 ‘구지라’가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단다. 난감한 일이다.

바람 방향만 맞다면 우린 태풍이 불어도 괜찮다. 안전보다 성공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바람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각자 대응방법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설사 알았다 해도, 그저 마음 편하게 먹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만을 경험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뗏목이 남서쪽으로 밀린다. 최악의 상황이다.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동중국해를 넘어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고생 여부가 아니라 성패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파도도 높아진다. 파란 바다에 흰 연기가 깔리는 듯하고, 소 입에서 흐르는 침 같기도 하다. 몸을 휘청거리면서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제 더 이상 못 보기 전에, 빈사 상태에 빠져 선실 안에 갇히기 전에 실컷 이 야성의 바다를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물결이 아직은 춤을 춘다. 영화 ‘화양연화’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물결 같은 음악을 따라 물결처럼 흔들리는 장만옥의 몸이. 물가루들이 날라와 눈동자를 찌른다. 돛의 끝단이 파르르 떨린다. 살결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다. 설산의 눈사태처럼 파도들이 부서져 내리며 산처럼 밀려온다. 뗏목이 튀어 올랐다가 내리 꽂히면서 채 못 따라 온 물결들은 뗏목 위로 나뒹굴어진다.

며칠째 우린 갇혀 있다. 얼굴 색깔들이 변해있고, 몇 시간씩 말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태풍이 지나면서 폭풍이 몰아치고, 그러다보면 또 폭풍이…. 그동안 몇 번씩 돌면서 온바다를 다 헤집고 다닌 것 같다. 제주도를 향해 다시 북상하기까지 하였다.

제비들이 날아와 뗏목에 앉고, 한 마리는 선실 안에 들어와 잠시 몸을 녹였다. 그의 떨리는 눈빛에서 시신으로 떠다니는 식구들의 환영이 비친다. 파도 위를 갈녹빛 해초들이 떠다니고, 그 속에 따개비들이 달라붙어 파도를 견딘다. 장보고도 이런 상황을 경험했을까? 아마 더했겠지. 역사란, 삶이란 이렇듯 진지한 거로구나.

드디어 대원들의 일부가 하선했다. 과연 가능할까? 항해에 성공하는 것이. 우릴 두고 떠나는 그들이나, 남아 있는 우리나 모두 심각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출렁거리는 파도와 멋대로인 바람에 지겹게 휘둘리고 있다. 최후의 결전을 벌일 순간이 서서히 다가왔다.

출항한 지 12일째인 30일, 지금 일본 고토(五島)열도를 바로 앞에 두고 있다. 원래 목적지는 큐슈의 하카타항이었지만, 이미 제주도로 올 때 난 고토열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게 역사이니까. 다만 남이냐 북이냐의 문제, 그리고 시간이 문제였는데, 이제 장보고호는 남쪽의 한 섬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다. 어제부터 강한 서풍을 동반한 폭풍이 우릴 덮쳤다. 주돛을 내리고 앞돛만을 올리고 항해해왔다. 물결이 덮여 나가기는커녕 선실의 창문을 뚫고 물결이 들이쳤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예측하고 있었고, 서풍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해 왔다.

등대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동네 고깃배들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내일 새벽에 상륙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항진했다. 바로 앞에서 해벽이 시커멓게 몸을 드러낸다. 이대로 돌진하다간 산산조각이 난다. 1997년 흑산도 상륙할 때가, 그리고 발해 1300호의 최후가 생각난다. “빨리” “서둘러” “내려” “앵커” 긴박한 소리들이 어지럽게 난무한다. 공포감이 휩쓴다. 처음 탄 김신호 경기일보 기자의 얼굴이 랜턴 불빛에서 일그러진다.

5월 1일 장보고호 日 나루섬에 도착

향해 13일째 5월 1일 새벽 2시10분, 달빛 하나 없는 밤에 장보고호는 나루(奈留)섬 250m 전방에 닻을 내렸다. 길고 지루하고 불안한 항해를 마침내 끝냈다. 상륙을 불허한 일본의 태도로 만 안에서 2일 동안 억류(?)돼있던 우리는 5월 3일 오전 8시 강제상륙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한국정부와 일본 해상보안청, 우리 외교공관 등과 여러 차례 교섭을 벌인 끝에 그날 오후 2시 무렵, 일본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나루시마항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공해상에서 우리 무궁화호에 예인돼서 5월 4일 오전 8시 제주도 대포항으로 귀항하였다.

이렇게 해서 장보고 뗏목 역사탐험은 끝이 났다. 우리는 장보고와 그들의 바다를 역사의 먼지 속에서 끌어내어 다시 물결 위에 띄워놓았다. 그들의 꿈이 다시 한 번 21세기에 꽃피기를 기원하며.<끝>

<윤명철 동아지중해 종단 뗏목 역사탐험대 대장·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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