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기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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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도중, 마음 한구석에서는 제주의 작은 포구들의 모습이 자주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며칠 전에 본 대평리 포구나 신양리 포구의 탓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곽 시인은 전국의 작은 포구들을 마음껏 떠돌아다니면서 포구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물론 포구에 얽힌 사연이나 서로 다른 포구의 이미지를 마치 일기처럼 그리고 시처럼 써내려갔다.

포구기행을 읽으면서 수없이 작은 포구 안으로 흘러드는 물결처럼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더불어 시인이 현실세계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귀재(鬼才)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러웠다.

시인은 제주의 포구도 다녀갔다. 사계 포구와 조천 포구, 우도 포구였다. 포구 선택도 마치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레 발 닿는 곳이면 족했던 모양이었다. 시인의 발길이 닿는 포구마다 정겨운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이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정겨운 이야기는 포구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정만큼이나 소금기가 배어 있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바닷바람처럼 신선했다. 포구에 얽힌 여러 가지 사연에서는 항상 현재에서 과거로, 혹은 과거에서 현재로 교차하는 시간의 역동성도 맛볼 수 있었다.

제주의 포구 이야기에서는 조선 선조 때 백호 임제와 영조 때 석북 신광수가 등장하기도 하고, 이어서 화가 이중섭과 추사 김정희가 차례로 등장했다가 다시 제주 해녀가 중요한 관찰 대상이 되어 등장하곤 했다. 또한 제주를 다녀간 조선시대 여러 목민관과 기원전 3세기 중국 진시황의 충복이었던 서불(서복)도 등장한다.

이렇듯 시인은 자신의 발길이 닿는 포구에서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넘나들며 줄기차게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면서 전국의 여러 곳에 터잡아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들추어내고 한동안 잊어버렸던,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잊어버리고 있는 애환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필자도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때면 종종 포구를 찾곤 한다. 그 때의 포구는 현지에서 갯내음을 맡으며 직접 관찰하는 포구일 때도 있지만, 실내에서 보는 고지도(古地圖) 속 포구이거나 혹은 단순히 서적 속 포구일 때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주의 포구가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지만, 저마다 독특한 모습을 취하며 도내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숙종 때 이형상 목사가 제작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도 잘 나타난다. 탐라순력도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그린 그림지도이지만 거기에는 당시의 제주 포구들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특히 탐라순력도 중 한라장촉(漢拏壯 )이라 이름지어진 제주전도(濟州全圖)에는 모두 79개 포구의 정확한 위치와 그 이름이 기록돼 있다. 이 포구들 중 일부는 이름이 바뀐 것도 있으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 주민들의 생활의 애환을 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로 나가서 관찰을 하든 고지도 상에서 관찰을 하든,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포구에서는 제주 주민들의 역사와 문화의 한 단면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제주의 포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포구의 역사가 곧 마을의 역사’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도에서는 바다를 등지고 살아간다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곽 시인의 ‘포구기행’은 제주의 포구를 더욱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제 시인의 생각을 좇아보고 싶은 욕심까지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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