倫理失踪의 위기와 기독교의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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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윤리 실종이니 윤리 부재니 혹은 도덕의 타락이니 하는 말들이 우리 귀에 너무 익어 세상과 시대를 모르는 사람의 호사스런 잠꼬대처럼 들릴 정도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성공과 힘이 곧 정의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풍토 속에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의 붕괴를 에너지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막강한 영향은 무질서와 혼돈, 그리고 불안의 연속, 철저한 자기 본위의 삶, 순간적인 쾌락 추구, 극단적인 이기주의, 자유는 쟁취하되 책임은 기피하는 저질문화를 양산하고 있다.

기술문명의 꽃인 정보의 고속화는 찰나에 집착하게 하고 인류의 숭고한 정신문화유산마저 낡아빠진 폐품으로 처리하는 방자함이 영웅시되면서 인간의 존엄과 신비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세기말적 상황 속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처럼 주옥 같은 교훈은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처럼 발에 밟히고 물어뜯기고 있다.

이렇듯 참담한 사회현실 속에서 역사에 책임을 지는 종교로서 기독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기독교 윤리 문제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일반 사회윤리는 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일정한 규칙을 지니고 예절을 지킴으로써 남의 침해를 받지 않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그것은 남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은 어디까지나 남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대방을 존중한다. 그래야 사회질서가 잡히고 결국 나도 마음놓고 살 수 있다.

기회 균등이 보장된 오늘의 사회는 경쟁사회이다. 신분사회의 상당한 폭력성을 제거한 합리적인 타협의 사회이다. 거기에서 만인의 경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지 않도록 일정한 제어를 하는 것이 사회윤리다.

그러나 경쟁사회에는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 사회 속에 사는 한 경쟁은 있게 마련이고 경쟁이 있는 한 우리는 피차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사회윤리가 극도로 땅에 떨어진 시대에 기독교마저 윤리의식을 상실한 채 물량주의와 성장제일주의, 그리고 기복주의와 황홀주의에 매몰된 채 삭막하고 참담한 사회문제를 나 몰라라 하든지 의식없이 타락에 편승한다면, 이 땅 역사 속에 존재할 이유를 상실한 종교, 세상보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할 종교, 그리고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힘을 받을 종교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소극적으로는 결코 불의와 야합하지 말아야 한다. 정당성이 없는 이익은 단호히 멀리 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편승하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을 시도하는 일은 화약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힘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겸손하고 옳게 사용하지 않는 것은, 나와 남을 동시에 함정에 빠뜨리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무책임한 보수적인 폐쇄성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적극적으로는 제도적 불의에 예언자적인 도전을 해야 한다. 불의한 힘으로 인해 상처받은 집단과 개인을 싸매고 치유하는 사마리아 사람의 자리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에 의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모든 분야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진력해야 한다. 사회의 가장 기초 단위인 가족공동체의 거룩한 신비와 순결, 존엄이 지켜지도록 신(新)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창출해내야 한다.

고난을 동반하지 않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오늘의 위기 앞에 고뇌에 찬 결단으로 회개하고 비장한 각오로 헌신해야 할 숙명적 과제 앞에 선 교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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